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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지수' 상봉기(相逢記)

아라홍련 2013. 4. 22. 03:30

 

3월에 만나기로 했던 '지수'와의 약속은 두 사람 모두 바쁜 관계로 그만

서로 잊고말았다.

지수는 지금 한창 공부 중이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벌써 1년 째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의 끊고, 두문불출 하루종일 공부만 한다.

우리가 심야나 새벽에도 연락이 가능한 건, 둘 다 밤을 새며 공부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4월 21일, 일요일에 만나자고 일찌감치 약속을 했다.

한데, 난 생각이 많았다.

이번 시험에 좋은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얼굴을 본 지 꽤 오래 되었음에도, 나는 심사를 숙고했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렸다가 시험이 끝난 후에나 보자고 했다. 

그러나 지수는 미안지심 때문인지, 공부에 지쳐서인지, 그냥 4월에 보자고 했다.

우리는 어제 정오에 만나기로 며칠 전에 약속을 재확인했다.

한데, 우리 두사람 모두 일요일 아침 7시까지 밤을 새우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지수에게 전화해 약속을 한시간 미뤄, 오후 1시에 만나자고 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퍼뜩 일어나보니, 벌써 약속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다급해진 나는 잠결에 옷방에 뛰어들어가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옷이나 입었다.

며칠 전부터 얌전하게 준비해놓은 그린색 트렌치코트는 생각나지도 않았다.

평소에 긴 머리를 단정히 매고 다니던 내가, 급한 김에 눈에 보이는 모자만 들고 

그대로 뛰어나갔다.

립글로스조차 약속장소에 가서 발랐다.

순간, 유리에 비친 내 옷차림을 보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게 대체 무슨 옷차림인고...?

거울을 꺼내보았다.

전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침을 먹고 바로 취침을 했던 터라 얼굴이

호빵처럼 부어있었다.

한마디로 난감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급히 썬그라스를 꺼내서 썼다.

 

한데, 1시가 다 됐음에도 '지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뭥미...!?  뭔 이런 일이 다...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더 기다리다가 지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했다.

그래도 받지 않았다.

입에서 저절로 헐~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지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들었다가 이제야 깼다는 숨찬 목소리였다.

일단 안심시키기 위해 서두르지말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그리고 대책없이 길에 서서 기다렸다.

꽃비를 뿌리려고 작정한 듯, 유난히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었다. 

지수는 50분 후에야 허겁지겁 나타났다.

난 길에 서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셈이 됐다.

만약 지수가 아니었다면... 50분이 아니라 10분이라도 길에서 대책없이 기다리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 서슴없이 인간관계를 끊고 상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린 오랫만에 점심을 함께 먹고, 주변에 있는 공원으로 꽃구경을 갔다.

고목인 자목련의 자태가 햇빛 속에서 화려하게 빛났다.

백목련은 고고한 자태를 뽐냈다.

내가 좋아하는 벚꽃은 거센 바람결에 따라 수평으로 꽃비를 뿌렸다.

마치 꽃눈이 흩날리는 듯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저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바람이 세게 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수는 스마트폰으로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채 공부만 하며 살고 있었음에도, 눈부신 젊음 때문인지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지난 시간의 노고가 초췌함으로 여지없이 묻어났다.

지수를 보며, 이몽을 쓴 몇 년 동안 하루에 20시간 씩 도서관에서 작업을 하던 기억이

뇌리를 스쳐지나가 잠시 가슴에 싸한 기운이 감돌다 사라졌다.

지수도 지금, 그때 나처럼 목숨 걸고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은 다음, 우리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수다를 쏟아냈다.

소설 때문에 날 동성애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얘기... 지수는 공부하는 애로와 고민 등을 서로 

얘기하며 까르륵 웃었다.

공부 때문에 내 블로그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지수가 커피숍에서 블로그를 검색한 뒤

내가 올린 글들을 읽으며 즐거워했다.

지수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본디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다.

나와 친하다면, 거의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이다.

책을 좋아하고, 공부를 엄청나게 하며, 잡된 짓은 거의 안 하고, 삿됨이 없다.

그래서 유유상종(類類相從) 아닌가...

한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확인해보니 하나같이 내가

썬그라스를 끼고 찍은 사진 뿐이었다.  

이건 또 뭥미...!?

이미 해는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다시 공원으로 가서 썬그라스 벗은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그리고 시험 끝난 후에 다시 보자고 약속한 뒤, 헤어졌다.

 

지수야!

너와 함께 찍은 사진... 전에 내가 블로그에서 인증사진 올린다고 한 적이 있어서

올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중요한 시험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네 사진 올리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  

나이가 많아지니 생각 또한  깊어지는구나.

네 사진 올리고 싶은 거 참는 것... 자주 만나 얘기 나누고 싶어도 기다리는 것...

이런 게 다 정성을 들이는 거란다.

넌 아직 젊어서 잘 모를거야.

오늘 소중한 시간 내주었는데, 사진까지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시험 끝나고 만나서, 사진 많이 찍고 또 신중히 생각한 뒤 블로그에 사진 올리자.

네 사진 올리는 것 때문에 심사숙고 거듭하느라고, 어제 바로 사진 보내줬는 데도

금방 올리지 못하고 지금에야 올린다.

시험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공부 열심히 해라.

나도 외국에 근무하는 친구 한번 있어보자.

나는 유독 외국에 교민이나 유학생 등 충성도 높은 독자들이 많이 있으니,

더욱 네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구나.

이 사진 확인한 뒤 마음 가다듬고, 이제 다시 공부에만 올인해라.

그리고 예쁜 사진 많이 찍어줘서 고마워.^^   

     

  

            인물 위주로 사진 보지말고, 위주로 사진 감상하기. 약속! 

 

                                          <자목련(紫木蓮)>

 

 

                                         <백목련(白木蓮)>

 

 

                                        <내가 좋아하는 벚꽃>

 

 

                         <아름다운 벚꽃, 선경(仙景)이 따로 없네...>

 

 

 

 

 

 

 

 

                                     <진달래도 한창 절정...>

 

 

           <오우, 이 사진만 보면 며칠간 금식은 거뜬할 것 같은 느낌...>

 

 

       <그래도 햇빛이 아직 있어서 썬그라스 벗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진달래 앞 벤치에서... >

 

 

                                        <꽃들의 향연이 아름다운 계절...>

 

 

                                <생명이 솟아나 온 세상이 연두빛 잎을 틔우고...> 

 

 

                                           <금식할 때는 꼭 이 사진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