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단 하나 남아있는 '이백'의 유일한 글씨
山高水長 物象千萬 非有老筆 清壯可窮
十八日 '上陽臺書' , 太白
산은 높고 물은 길어 천만가지 형상들
늙은이의 필력이 아니니
맑고 장대함이 가히 궁극에 이르렀구나.
18일, 상양대서 이백
* 이 글씨는 744년 이백이 두보와 고적을 낙양에서 만나 황하를 건너 제원의
양대궁에 있는 은사 司馬承禎을 만나러 갔으나 司馬承禎은 9년전 죽고 없고
그가 그린 벽화만 남아 있어, 그 벽화를 보고 회포를 쓴 화제(畵題)이다.
<양대궁(陽臺宮)>
* 양대궁 : 하남성 濟源시에 있는 도교사원으로, 735년 만들어졌다.
* 사마승정(司馬承禎, 647~735)
당나라 때의 도사이자 도교학자.
자는 자미(子微), 법명은 도은(道隱).
학문이 깊고 넓었으며, 그의 문장 또한 준수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서예에 뛰어났고 특히 전서(篆書)를 잘 썼는데, 독특하면서도 특이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 금전도서(金剪刀書)라고 했다.
일평생 名利에 초연했고, 도술에 심취했으며, 기를 단련해 금단을 이루는
연기복약(煉氣服藥)의 묘술을 터득했다.
이백(李白)이 도술에 심취했을 때 스승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노자와 장자의 내용을 본받아 그 뜻을 펼쳤고, 유교와 불교의 영향도 받았다.
때문에 수정(守靜)·거욕(去欲)·수심(修心)·연기(煉氣)를 통하여 마지막에는
좌망득도(坐忘得道)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마승정은 측천무후와 예종(睿宗), 현종(玄宗) 등 3대에 걸쳐 대단한 신뢰를
받았다. 죽은 후에는 정일선생(貞一先生)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주요저작으로는 <좌망론 坐忘論>과 <복기정의론(服氣精義論)>이 있으며,
또 <태상승현소재호명묘경송(太上昇玄消災護命妙經頌)>, <천궁지부도경
(天宮地府圖經)> 등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