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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그림 감상하기

아라홍련 2013. 4. 3. 03:45

 

             <삼추가연(三秋佳緣, 세 명이 가을에 맺은 아름다운 인연), 간송미술> 

 

 

         이 풍속화는 수위가 좀 높은 그림이다.

         제목도 그림 내용과 다른 반어법을 이용해 지었다.

         이 그림은 화제(畵題) '삼추가연'처럼 세 명이 아름답게 맺은 인연이 아니다.

         지금으로 치면 청소년 보호법에 위반되는 그림이다.

     

          이 그림 속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젊은 한량...

          한 사람은 나이 어린 동기(童妓)...

          또 한명은 포주 역할을 하는 간교하게 생긴 노파...

          이렇게 세사람이다. 

          우선 이 그림을 그린 혜원 신윤복이 오른쪽에 써놓은 詩부터 살펴보자.

          이 詩는 혜원의 자작시가 아니다. 

          당나라 시인인 원진(元稹)이 쓴 '국화(菊花)'라는 시이다.

          원진...

          어디서 들어본 이름 아닌가?

          당나라의 기녀 출신 시인으로 유명한 '설도'의 10년 연하 애인이었던 바로 그 인물...

          그 역시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다. 

 

               秋叢繞舍似陶家         가을꽃이 집을 둘러싸니 도연명 집과 흡사해

                遍繞籬邊日漸斜         빙 두른 울타리에 해가 점점 기운다

               不是花中偏愛菊         꽃 중에 국화만 편애하는 것은 아니지만

                 此花開盡更無花       이 꽃 피었다 지고나면 다시 피는 꽃 없으니

 

          위의 시에서 도가(陶家)란... 도잠, 오류선생으로 불리는 '도연명'의 집을 말한다.

          흔히 국화가 많은 집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는 도연명의 詩 <음주>에 採菊東籬下등 국화와 관련한 구절이 많아 생긴 詩語이다.

 

          위의 그림 '삼추가연'은 조선 화단에 유일하게 남은'초야권(初夜權)'을 사는

          장면'이다.

          그림이 수위가 좀 높다고 표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공공연히 기생들의 초야권이 매매가 되었다.

          초야권을 사는 풍속에 관한 당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남자들이 동기(童妓)의 초야권을

          사려면 3가지를 보장해줘야만 했다.

 

          첫째, 상당기간 동안 먹을 음식을 제공해주어야 하고,

          둘째, 그 기간만큼 입을 옷을 제공해주어야 하며,

          셋째, 원앙금침 한 채를 해줘야 한다.

 

          초야권을 사서 동기(童妓)의 머리를 올려주려면 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데 위의 그림은 정식으로 기방에서 초야권을 산 게 아니고, 한마디로 날로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일단 동기의 머리를 얹어준 장소가 기방(妓房)이 아니다.

          그림을 보면 국화꽃이 만발한 한적한 야외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세사람의 인적사항이 금방 드러난다.

          젊은 오입쟁이와...

          뭣도 모르고 처음 머리를 올리는 어린 동기...

          그리고 이를 주선한 포주 역할을 한 깡마르고 노회한 표정의 주막집 늙은 노파이다.

 

          한데, 그림을 보면 젊은 남자는 저고리를 벗은 채 대님을 만지고 있다.

          그렇다면 저 한량은 지금 옷을 벗고 있는 중일까, 아니면 입고 있는 중일까?...

          힌트는 남자 머리에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왼쪽의 뒷머리와 오른쪽의 옆머리가 온통 상투 밖으로 풀어헤쳐

          있다.

          방금 전까지 야외에서 격렬한 정사(情事)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절화기담(折花奇談)>에 힌트가 있다.

          1809년(순조 9년)에 쓰여진 이 애정소설에도 '삼추가연'과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이생'과 '순매'가 운우지정을 나누는 장면을 '일진일퇴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니,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분 바른 뺨은 달아올랐다."고 묘사했다.   

          남자는 웃통을 벗고 막 대님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 전까지 옷을 홀딱 벗고

          있다가 지금 다시 옷을 입고 있는 중이다.

          느글거리는 눈빛만 봐도 이곳에서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짐작할 수 있다.  

          남자의 얼굴은 이미 야심을 채운 느긋한 눈빛이다.

 

          이번엔 동기(童妓)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

          어린 소녀는 넋이 나간 채 긴장이 풀어져 속치마를 거의 드러낸 채 퍼질러 앉아있다.  

          방금 전까지 야외에서 요란한 무산지운(巫山之雲)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린 기생은 황망하기 짝이 없는 상태로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다.

          그림 속의 한량은  정식으로 초야권을 사서 동기의 머리를 얹어준 게 아니라, 벌건

          백주 대낮에 주막집 노파에게 돈 몇 푼 집어준 뒤, 야욕을 채우고 말았다.

          남자는 돈을 적게 들여 야외에서 동기와 일을 치렀고, 노파는 달랑 술 한 병만 들고와

          털도 안뽑고 이문을 챙겼다.

          한마디로 날로 먹은 것이다.

          방사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노파는 남자에게 큰일 치렀다고 술잔을 권하는 한편,

          어린 기생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을 혜원(蕙園) 신윤복이 포착해 그린 것이 바로 '삼추가연'이다.  

 

          이 그림은 화제(畵題)처럼, 깊어가는 가을에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세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아름답게 만발한 국화꽃 그림 속에는, 성매매의 뒤끝에 남는 우울함이 잔뜩 배어있다.

          씁쓸한 그림이다.

          혜원(蕙園) 신윤복을 조선시대 최고의 풍속화가이자 철학자, 심리학자라고 칭하는

          것은 이처럼 당시의 은밀한 풍속들을 다중적으로 날카롭게, 또 절등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신... 특히 남자들은 이 그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또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세상은 변해도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수백 년 전이건, 현대이건, 어린 소녀에 대한 남자들의 성적 환타지는 동일하다.

          로리타 컴플렉스(Lolita complex)는 거의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다. 

          요즘처럼 문란한 시대에 이런데 자칫 잘못 빠졌다가는 인생, 한방에 훅 간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욕(情慾)을 제대로 콘트롤 하지 못하면,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된다.

          이는 불변의 진리이다.            

 

          이 작은 풍속화 한 장 속에 당대의 문학과 미술, 풍속, 역사, 고전, 인간심리가

          고스란히 들어다.

          그래서 명화(名畵)이다.

 

 

             *  이 글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