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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사이코패스, 무관심, 탈출구

아라홍련 2013. 3. 14. 23:56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던 한 어린 학생이 목숨을 버린 일로 우리나라가 지금 떠들썩하다.

15세 소년이 몇 년간 동급생들로부터 지옥같은 괴롭힘을 당하다가 견디다 못해, 결국

죽음을 택했다.

이는 소년이 비상구나 탈출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고통스런 세월을 통해 아마도 무서운 사실을 감지한 듯하다.

친구 또는 동급생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를 느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그런 삶은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수치스러우며, 너무 잔혹해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고통을 자신은 더 이상 감당할 능력이 없으며, 그런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을 일찌감치 깨달은 듯하다.

그래서 결국 새처럼 훨훨 날아 미련없이 세상을 등졌다. 

오늘 유서가 공개됐는데,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절절하다.

그동안 얼마나 교묘하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유서에다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까지

꼼꼼히 적어놓았다. 

어떤 전문가도 그처럼 세심하게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소년에겐 그동안 학교의 무관심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을지, 사회와 제도적인 문제, 부모와

선생님, 친구들의 무관심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느껴졌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는 이번 사건의 일지를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다.

때문에 이번 사건에 몇 개의 키워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소년을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오랫동안 괴롭힌 아이들은 성인 조폭에 버금가는 폭력성과

가학성을 가진 악마 성향의 아이들이다.

아니, '아이'나 '소년'이라는 표현이 가당치 않을 정도로 잔학한 폭력배들이다.

이들은 중학생 때부터 피해 학생을 수시로 잔인하게 때린 것은 물론, 금품을 갈취하고

수시로 언어폭력으로 모욕을 주며 공포감을 조성해 소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또 목욕탕이나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소년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여러번

시키기도 했다.

겉모습만 인간이지, 영혼은 악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싸이코패스(Psychopath)로 분류할 수 있다.   

싸이코패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과 수치심, 괴로움을 주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잔학하면 할수록,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하면 할수록,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들이 느끼는 쾌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들이 벌이는 범죄의 잔학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이다.

이들에겐 양심이나 죄책감, 도덕, 질서, 윤리라는 게 애시당초 없다.

뇌 자체가 그렇게 움직인다.

한데도 이들은 똑같이 사회에서 정상인들과 섞여서 살아간다.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이 아니고 인격장애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이들을 제지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정신분열증이나 정신이상자들의 범죄비율 통계를 보면

1%에도 훨씬 못 미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일단 병원에 격리시키든지, 약을 먹여 충동조절을 하면 사회적인 

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들은 다르다.

이들은 차가울 정도로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계산적이다. 

약자를 보면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며, 비열하고, 교활하게 뇌가 빠르게 움직인다.

그럼에도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악마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지없이 정상인들과 뒤섞여 이상성격자로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약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발견하면 이유없이 괴롭히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곤 한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여러가지 특징을 나타낸다.

초등학교 때부터 심약한 학생을 먹잇감으로 삼아 왕따를 시키고, 폭력을 일삼으며,

금품을 갈취하고, 공갈협박을 일삼는다.

충동조절이나 분노조절도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약자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란 게 전혀 없다.

또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이 없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인격장애나 과도한 행동장애를 보이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했을

경우 훗날 거의 사이코패스가 된다.

이런 아이들을 죄책감이나 우정, 양심을 설교하며 교육만으로 양지의 길로 인도한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이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악마적인 가해자 한명을 피해자인 소년의 집에서 반년 동안 재우고,

먹이고, 입히며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소년을 협박해서 부모를 설득하게 한 뒤, 함께 살면서 24시간 지속적으로 괴롭힌 것 같다.

이는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무서운 일이다.  

아들이 집에서조차 쉬지 못하고, 악마에게 계속 시달림을 당하는데도 소년의 부모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아들이 학교폭력과 성적 수치심, 왕따에 시달려 결국 삶을 등졌는데도, 소년의 

아버지 반응은, "아들처럼 먹이고, 입히고, 재웠는데, 그래서 아들과 친한 줄 알았는데

걔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였다.    

아들을 쉬운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24시간 함께 생활하며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심지어

자기 집 목욕탕에서 아들과 강제로 함께 목욕을 하며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수시로 시켜왔는데도,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친구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게 했음에도 이를 만류하는 친구조차 없고,

선생님도 이런 시달림을 그동안 전혀 몰랐었다니 그동안 소년이 느꼈을 절망감과 비애감,

무기력감이 어떠했을지 끔찍한 생각마저 든다. 

일진 조폭의 광폭한 학대와 폭력을 부모도 막아줄 수 없고, 학교도 막아줄 수 없고, 친구도

막아줄 수 없고, 심지어 선생님까지도 막아줄 수 없다면, 소년이 희망을 걸고 살아갈 곳은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없다!

탈출구가 없다....

비상구도 없다....

결국, 15살의 나이에 절절한 유서만 남긴 채 새처럼 훨훨 날아 이 끔찍한 사바세계를

미련없이 떠나고말았다.

이승을 등진 것이다. 

이번 사건엔 사회적, 제도적 문제는 물론, 부모와 친구들, 왕따, 일진회, 선생님의

무관심, 언어폭력, 금품 갈취까지 종합적인 문제점들은 모조리 들어있다. 

바로 이번 사건의 키워드들이다.

 

가해자들의 반응은 더 놀랍다.

유서에 이름이 가해자로 지목되고, 친구들의 증언이 속속 나오며, 같은 반 학생들의 

진술이 계속 나오는데도 "피해자 아무개는 잘 모르는 아이다. 걔가 왜 내 이름을 언급

했는지 전혀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들이다.     

가해자들의 부모 또한 거품을 물며, "우리 아이가 억울하게 거론됐다."고 펄펄 뛰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말 무서운 일 아닌가?

한 소년을 몇 년간 지속적으로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괴롭혀, 삶의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스스로 삶을 등지게 만들었으면서도 일말의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다.

아직 조폭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애들도 아니다.

이제 중학교를 갖 졸업한 소년들이다.

한데, 중학생 때부터 하는 짓은 성인 조폭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이 믿는 구석은 대체 뭘까.

훗날, 어린 시절의 잔학성과 가학성을 훈장처럼 인정받아 조직폭력배의 길로 쉽게

들어서려는 것일까?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를 따돌림을 시켜 영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면 

부모의 책임 또한 크다. 영적으로는 거의 같은 책임을 면치 못한다.

이 세상 그 어떤 인간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거나 괴롭힐

권한이 없다.

영혼 하나하나 모두 다 나름대로 숙제거리를 가지고 사바세계에 태어나, 이 혼란스런 

인간계에서 이리 얼키고 저리 흔들리며 자신의 숙제를 힘겹게 해나가고 있다.

한데 제 숙제는 제대로 하지도 못할망정, 다른 영혼까지 숙제를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괴롭혀 결국 사계(娑界)를 떠나게 만들었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피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고 살아도 부족하다.

 

자신의 지난 날을 한번 기억해보라!

혹시 어린 시절에 누군가를 왕따 시킨 적이 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라!

아니면 왕따 당하는 친구들을 긍휼(矜恤)히 여겨 이를 적극 만류했었는지, 혹은 지켜

보면서 가해자들과 동조하고 같은 쾌감을 느꼈었는지, 정직하게 기억을 되살려보라!

만약 동조하거나 방치한 기억의 잔해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평생을 하늘과 땅에

잘못을 빌어도 부족하다. 

피해자의 영혼에 낙인처럼 새겨진 고통과 괴로움, 수치심이 사라질 때까지 긴 세월동안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 훗날, 이 세상을 떠난 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지름길이다.   

인과(因果)에는 반드시 응보(應報)가 뒤따르는 법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신앙은 바로 여기가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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