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시경(詩經)을 읽자, 이를 따라 읽던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이 시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 3,000년 전 시이기는 하지만 요즘 감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빼곤, 무슨 가치가 그리 있는지 모르겠다... 뭐 이런 반응들이다.
나 또한 그들의 반응이 그리 놀랍지가 않다.
역사공부, 한문공부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글로 번역된 詩만 읽으니 시경
속에 담긴 참뜻과 가치를 이해할 리가 없다.
시경은 중국 최초의 시가총집이자, 동아시아 시가문학의 원조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인 서주(西周) 초기부터 춘추(春秋) 중기까지 약 500여 년간
민초나 사대부가 창작했거나, 궁중 의식이나 제사에서 연주된 305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이는 인류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꼽히는 호메로스(Homeros)가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영웅서사시 일리아드(lliad)나 오디세이(Odyssey)를 쓴 때보다도 시기적으로 더 빠르다.
공자(孔子)는 자신의 아들 백어(伯漁)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시경(詩經)의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다.
시경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마치 담장을 마주 하고 있는 것과 같아서 학업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시경이 학업의 필수과목으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엘리트들이 꼭 읽어야 할 최고의 경서 중 하나로
시경을 꼽았다.
왕의 그림자이자 최측근인 조선시대의 내관(內官)들은 많은 공부를 했다.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四書)와 소학, 삼강오륜 등을 공부하고, 이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뤄 승진시험에 활용했다.
한데, 시경(詩經)만은 가르치지 않았다.
내시부 수장 상선이 종2품까지 올라가는 중요한 관리임에도, 시경은 배우지 않게 했다.
시경을 사대부들만의 문학, 사대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내시들이 관직은 높아도, 사대부들이 그들을 한 단계 낮게 폄하하는 시각이
있었음을 뜻한다.
그만큼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는 시경이 수준 높은 학문으로 인정 받았다.
시경은 단순한 고대중국의 시집이나 노래 모음집이 아니다.
詩經은 신라 때도 지식 계층의 필독서였다.
경주 박물관에 있는 임신서기명석(壬申誓記銘石)을 보면 신라의 젊은이들이 시경을
필독 도서로 공부했다고 쓰여있다.
'임신서기명석'은 신라 청년들이 국가에 충성을 맹세하고 학업의 성취를 약속한 내용을
새긴 돌이다.
여기엔 신라 청년들이 <상서(尙書)>와 <예기(禮記)>,<춘추전(春秋傳)>,<시경(詩經)>을
필독서로 공부했다고 적혀 있다.
또 조선시대에도 시경은 최고의 학문이었다.
경복궁의 '경복(景福)'이란 이름도 정도전이 시경에서 따왔다.
'경복'이란 단어는 시경의 대아(大雅) 중 기취(旣醉)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아'는 주로 궁중에서 조회할 때 부른 노래이다.
하지만, 그 중엔 간혹 잔치할 때 부르는 노래도 섞여 있다.
'기취'란... "술에 취해"라는 뜻이다.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
(술은 이미 취하였고 은덕으로 배부르니, 그대여 만년토록 큰 복을 받으라.)
1395년 10월, 조선을 개국한 태조는 종묘에 나아가 신궁입궐을 보고했다.
이때 '정도전'이 시경의 "왕께서 만년의 수를 누리시고 군자가 하늘로부터 커다란 복을
받으시길" 이라는 구절을 따서 궁궐 이름을 경복궁(景福)이라고 지어바쳤다.
또 유성룡이 임진왜란 후 쓴 전란사 징비록(懲毖錄)이란 이름도 시경에서 유래했다.
'징비'란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삼가한다."는 뜻이다.
주송(周頌)의 소비(小毖) 편에 나오는 문장 중 하나이다.
백과사전을 보니 어느 학자가 '징비'라는 단어가 대아의 소비 편에 나온다고 했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대아가 아니라 주송(周頌)의 '소비'편에 나온다.
予其懲而毖後患
(지난 일에 데어서, 후환을 경계하노라.)
이 시는 성왕이 스스로 경계하여 지었다고 전해진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또한 시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용비어천가는 한글 가사와 한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시는 시경(詩經)의 시 형식을
본받아 4언시체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자들도 시경에서 유래된 게 많다.
"전전긍긍", "폭호빙하", " 타산지석", "일각여삼추", "해로동혈", "절차탁마" 등도 모두
시경에 나오는 단어들이다.
당신이 몰랐을 뿐이다.
詩經은 알고 읽으면 보물과 같은 책이다.
그래서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엘리트와 사대부들의 필독서였고,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수준 높은 문학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시대에도 서정성과 사실성에 깊이 공감할 수 있고, 예지(叡智)의 깨달음을 주는
소중한 책이기 때문이다.
또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 시경에 나오는 다양한 내용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문헌적으로 고증하는 중요한 역할까지 한다.
보석도 볼 줄 알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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