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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淨福)... 조촐한 행복

아라홍련 2013. 3. 9. 02:13

 

 

 

운동을 다녀오자마자 일단 손 먼저 닦은 뒤,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책상 앞에 앉는 일이다.

이는 KBS 1 FM 에서 밤 12시부터 하는 "전기현의 음악 풍경"을 듣기 위함이다.

매일 하는 이 일은 내겐 마치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은 행위이다.

인간의 목소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는 바로 음악 전문 DJ 전기현의 음성이다.

특히 남자의 목소리 중 "이렇게 좋은 목소리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은 전기현이 유일하다. (* 질투하기 없기^^)

그는 단 한번도 남에게 쌍욕을 하거나 거친 말을 한 적이 없을 것 같은 목소리의 소유자이다.

한마디로 영혼을 어루만지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조근조근... 한없이 조용하고, 한없이 섬세하다.   

그러나 그 섬세함 속에 만만치 않은 자존감이 묻어난다.

목소리 못지않게 나를 매일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한 시간 동안 들려주는 음악이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의 대부분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악들이다.

이는 두 사람의 감성이나 음악적 cycle이 같다는 의미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라디오에서 목소리만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는 워낙 전문성을 인정받는 음악 전문 DJ라 OBS-TV에서도 "씨네 뮤직"이라는 프로를

맡고 있다. 영화음악 전문 프로인데, 그가 선별하는 음악들은 워낙 아름답고 좋다.

한데 그의 얼굴을 보며 듣는 목소리보다, 라디오에서 목소리만 듣는 게 내게는 훨씬 몰입이

잘된다.

그래서 TV 는 어쩌다 한번 보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들을 때 가장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낀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늦은 식사로 인한 폭식을 방지하기 위해 호두 등 견과류를 먹으며

인터넷 기사를 보던 나는, 댓글을 읽다가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나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해 한동안 낄낄거리고 웃었다.

한데, 댓글 하나만 그런 게 아니다.

그 밑의 댓글은 더 웃겼다. 

얼마나 웃었던지 전기현이 뭐라고 말했는지, 음악은 무슨 음악이 나오는지, 도무지 집중이

안될 지경이었다.

기사 제목은 <하루 최고 7번까지... 무서운 프로포폴 중독>이었다.

한 40대 남자가 그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려 540여 회나 프로포폴을 맞았는데,

심지어 하루에 7번 맞은 적도 있다는 기막힌 기사였다.

한데 이 기사의 댓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루 7번 가지고 그러냐... 담배는 완전히 중독되면 하루에 20번 이상 꼬실라야 되는데..."

나는 "꼬실라야"라는 단어에 빵~ 터지고 말았다.

어떻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 밑에 있는 댓글은 더 가관이었다.

"야 히로뽕이 낳냐? 프로포폴이 낳냐? 도대체 머가 더 낳냐."

그랬더니 이런 답글들이 붙었다.

 

"히로뽕이 낳으면~> 히로퐁!   

 프로포폴이 낳으면~> 프로포퐁!

 (ㅡ..ㅡ) 낳지 마세요."

"둘다 아기는 못 낳죠."

"아기를 낳습니다."

 

이들 때문에 내가 오랜만에 낄낄거리며 소리내어 웃었다.

덕분에 오늘은 "전기현의 음악 풍경"에서 어떤 음악들이 흘러나왔는지, 전기현의

목소리는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웃음보가 터져 다시 한동안 웃음을 터트렸다.

매일 무시무시한 댓글들만 읽다가 어쩌다가 이런 재미있는 댓글들을 읽으니 이 해프닝도

내겐 정말 소중한 정복(淨福)으로 느껴진다.  

이 글을 읽고, 과연 안 웃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다시 웃음보가 터져 또 까르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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