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세종의 슬픔

아라홍련 2013. 3. 7. 06:43

 

얼마 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가장 존경하는 조선시대의 왕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학생들이 1위로 광해군을 뽑았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전문 포털 "리얼 히스토리"가 회원 3,015명을 일주일간 설문 조사한

결과이다. 이를 보고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일반학생들이 아니다.

대부분 공무원이 되기 위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다.

때문에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다.

역사왜곡이 이젠 그 끝을 달리는 듯 보일 정도이다.

심지어 광해군은 명명백백하게 조선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인정받는 세종대왕까지 제쳤다.

세종이 성군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학자는 우리나라에 단 한명도 없다. 

한데, 광해군이 세종과 정조를 제치고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뽑힌 것이다.

이는 최근 <왕이 된 남자, 광해>라는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때문에 생긴 일이다.

영화와 실제 역사를 구분 못한 채,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젊은 사람들이 기존의 역사를

`부정하고 엉뚱한 인물을 성군으로 꼽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1위     광해군(32%)

                            2위     세종   (30%)

                            3위     정조   (15%)

                            4위     성종   ( 7%)

                            5위     태조   ( 5%)

                            6위     영조   ( 4%)  

     

이상이 순위를 매길 수 있는 유의성, 타당성, 신뢰성 있는 통계이다.

이 순위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허구와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실제 역사와 혼동을 하다니...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연산군이란 영화가 허구로 포장돼 나오면 그땐 또 연산군을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꼽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중고등학생이 아니다.

공무원 시험을 위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역사인식이 이렇게 왜곡돼 있다면, 앞으로 역사왜곡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극히 우려스럽다.    

 

이런 영화에 앞서, 광해군을 성군이라고 꾸준히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사도세자도 억울하게 죽었다며, 그가 개혁군주이고 애민사상으로 무장돼 있던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유도 모른 채, 사도세자의 기분에 따라 잔인하게 매맞아 죽은 백수십 명의 영혼들에

대해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뿐만 아니라, 사도세자가 죽였다는게 거의 확실한 실종자들까지 있다.  

영화는 그냥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허구이다.

더구나 역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안 된다.

한데 이번 조사를 보면, 젊은이들이 이미 광해군을 정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순수하게 역사로만 바라보지 않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게 바로

역사왜곡이다.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다.

 

특히 광해군 일기에 기록이 없는 날들이 많아 그 부분이 수상하다고들 말하는데,

이는 실록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록을 읽다보면 일주일, 열흘씩 아무것도 안 쓰여 있을 때가 꽤 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일차 사료인 실록을 보지 않고, 이상한 책만 읽었다는 뜻이다.  

결국 허구적 창작물이 역사를 전문으로 공부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역사인식까지 바꾸는

대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광해군을 성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광해군의 공로는 실로 보잘 것 없다.

대동법 시행을 광해군의 공로라고 하는데, 실제로 광해군은 대동법 시행에 소극적이었다.

또 실리 외교를 꼽기도 하는데, 이는 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많아 논쟁이 있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광해군의 무리한 궁궐 증축으로 인한 백성들의 원성이나 광폭한 행동에서 나타난

여러 패악과 부작용 등은 기록에 산재해 있다.  

한데도 광해군을 세종대왕보다 더 훌륭하다고 뽑았으니, 지금 세종의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역사는 철저한 사료조사와 역사학계 전체의 논리를 살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음모론이 가미된 영화나 역사서, 소설을 보고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은 역사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이 글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