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李白)의 詩 때문에 아무래도 조만간에 술 한 잔 하게 될 듯.
부디 독작(獨酌)만 배우지 않게 되기를...
月下獨酌
(혼자 술을 마시다)
天若不愛酒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으면
酒星不在天 하늘에 술별(주성)이 있지 않으리라
地若不愛酒 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으면
地應無酒泉 땅에 술샘(주천)이 없어야 하리라
天地旣愛酒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하거늘
愛酒不愧天 술을 좋아함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네
已聞淸比聖 이미 나는 들었다네, 청주는 성인에 비유되고
復道濁如賢 또다시 들었다네, 탁주는 현인과 같다는 것을...
聖賢旣已飮 성인과 성현이 이미 마셨거늘
何必求神仙 어찌 반드시 신선이 되기를 바랄소냐
三杯通大道 석 잔을 마시면 위대한 도에 통하고
一斗合自然 한 말을 마시면 천지자연과 하나가 된다네
但得酒中趣 다만 술 마시며 얻은 멋이니
勿爲醒者傳 이 기분 취하지 않은 사람에겐 전하지 말게나
~* 이백(李白) *~
詩의 神仙 이백(李白)...
술을 유난히 좋아한 그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제목의 詩를 여러 편 남겼다.
술에 취하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신선의 세계를 마음껏 노닐며 시를 쏟아냈다.
시공간을 초월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면 섬광처럼, 별빛처럼, 시상(詩想)이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늘 외롭고 가혹했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면 늘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초대해 셋이 함께 마셨다.
달빛은 내 노래를 따라 흐르고, 그림자는 나를 따라 춤을 춘다.
그들과 언젠가 헤어지겠지만 은하(銀河)에서 다시 만나면 되리라.
그의 또 다른 호칭은 적선(謫仙)이다.
'귀양살이 와 있는 신선'이라는 뜻이다.
가까운 문우(文友)였던 '하지장'이, 장안에 이백의 처음 나타났을 때 그의 시를 일고
감탄해 붙여준 호칭이다.
사바세계의 사람이 아닌, 신선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선계(仙界)에서 죄를 짓고 인간세계로 쫓겨온 신선 같았다고 전해진다.
이백 자신도 "나는 본래 구만 리 하늘을 훨훨 나는 붕새같이 위대한 사람이다."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술에 젖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 하늘을 날아다니다 보니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듯 싶다.
그래서인지 평생을 한 발은 천상세계에 걸치고, 한 발은 사바세계에 걸친 듯 세상을
위태롭게 부유하며 살았다.
술을 마시면 섬광처럼 시상(詩想)이 떠올라 시를 한꺼번에 쏟아내던 이백이었지만
간혹, 현실세계의 가혹함과 모순적 삶에 지쳐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칼 뽑아 물을 잘라도 물 그대로 흘러가고,
술잔 들어 근심 씻고자 하나 근심 더욱 깊어만 지며...
( '宣州謝眺樓餞別敎書叔雲' 중에서)
금 동이에 만 금짜리 청주가 가득하고, 옥쟁반에 만 전짜리
진수성찬 넘치건만, 먹을 수가 없어서 잔 멈추고 젓가락 던지며,
칼을 뽑아 둘러보니 마음만 아득한...
( '行路難 其一' 중에서)
그럴 때면 그는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고, 다시 꿈속으로 훨훨 여행을 떠났다.
한가로이 냇가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다, 홀연히 또 배를 타고
태양 곁으로 가는 꿈을 꾼다.
갈 길이 험하도다.
갈 길이 험하도다.
갈림길이 많은데, 지금 어디 있는 건가.
바람을 타고 파도 헤칠 때가 틀림없이 있을 테니,
곧바로 돛 높이 걸고 창해를 건너련다.
'이백'의 생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대부분 추정이지만, 詩를 보면
사회에 대한 울분이 매우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삶이 가혹했기 때문일까?...
현실적인 유교보다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도교에 오랫동안 빠져 산천을 떠돌며
선술(仙術)을 연마하는 등 오랜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를 보면 도(道)의 세계에서 신선을 만나는 등 도교의 영향을 받은
시들이 꽤 있다.
하룻밤에 훨훨 날아 경호(鏡湖)의 달을 지나니
호수 위에 뜬 달이 내 그림자 비추며
나를 섬계(剡溪)까지 전송해줬네.
무지개를 옷으로 삼고
바람을 말로 삼은 구름의 신선들이 분분히 내려오고
호랑이가 거문고를 타고, 난새가 수레를 끄는 신선들이
삼대(麻)처럼 즐비했었네.
천재성이 있는 대신, 현실세계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던 이백...
한데, 모순되게도 정치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안녹산의 난' 이후 벌어진 권력싸움에 휘말리면서 유배를 가는 등, 고초를
많이 겪었다.
상상력이 뛰어난 상상의 대가이자, 타고난 로맨티스트였던 이백!
그는 천하를 유람하다 1,100여 편이란 엄청난 시를 남긴 채, 62세 되던 해에 安徽 當塗縣에
있는 친척집에서 병사한 후 龍山에 묻혔다.
일설에 이백(李白)이 술에 취해 호수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가전설처럼 전해지는데, 이는 호사가들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는 11살이나 위였던 이백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붓을 대면 비바람도 놀랐고, 시를 쓰면 귀신도 놀라게 한다
(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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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름다운 문제는 황제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세상에 유전되는 작품은 반드시 뛰어났네.
(文彩承殊渥 流傳必絶倫)
천재적인 시인은 술에 취하면 미친듯 詩를 쏟아냈다.
당나라 때의 한 천재시인은 하늘에서 내려와 술에 젖은 채 외롭게 사바세계를 떠돌다가
홀연히 다시 신선세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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