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아라홍련(阿羅紅蓮)

아라홍련 2013. 3. 2. 23:45

       <2009년 발굴 당시의 연꽃 씨 모습>

 
                                                                   <700여 년 만에 꽃을 피운 1세대 아라홍련, 2010년>
 
 
 
                                                                    <700여 년 만에 꽃을 피운 2세대 아라홍련, 2011년>

 

 
 
                                                                   <700여 년 만에 꽃을 피운 3세대 아라홍련, 2012년>

 

 
 

 

'아라홍련'
은 내가
다음(Daum)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이름이다.
블로그 이름인 사티하 그라하(Satyagraha)는 "진리추구" 또는 "진리의 힘"을 말한다.
간디는 사티하그라하 정신을 가장 중요한 영성의 뼈대로 삼아 생명과 평화사상을 실천했다. 
살아있는 동안, 이 세상에서 무엇이 참인지를 평생 끝임없이 배우고, 탐구하며, 노력한 간디는 
"약자들의 비폭력""강자들의 비폭력"을 명확히 구분했다.
전자는 적대자들을 꺾기 위해 공격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을 말한다.
하지만 후자인 사티하그라하, 즉 "진리의 힘"은 적대자를 억압적 행동에서 자유롭게 함으로써
그 적대자의 유익을 추구하는 고도의 비폭력적인 저항을 뜻한다.
한데, 내 블로그의 단골 방문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블로그 이름은 그렇게 심오하고 세련됐는데, 왜 사용하는 이름은 하필 "아라홍련"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왜 아라홍련(阿羅紅)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아마 깜짝 놀라며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09년 5월, <가야문화재연구소>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목간(木簡)이
출토된 경남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제14차 성산산성(城山山城:사적 67호발굴작업을
시작했다. 목간은 글을 적은 나뭇조각을 말한다.
한데, 유적발굴 중, 산성의 연못으로 추정되는 곳의 깊이 4~5m의 토층에서 연꽃 씨앗 10개를
발견했다.(* 위의 사진 참조) 
연구소에서는 이 중의 씨앗 2개를 <한국지질자원연구소>에 의뢰해 성분 분석 및 연대 확인을
의뢰했다. 연구소에서는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 
하는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한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다.
시료번호 602번의 연 씨는 650년 전의 고려 때 것으로 밝혀졌고,
시료번호 603번의 연 씨는 760년 전의 고려 때 것으로 밝혀졌다.    
씨앗 하나는 1270~1410년일 확률이 95.4%로, 다른 씨앗은 1160~1300년 일 확률이 93.8%로
나타났다. 연꽃 씨들이 평균 700년이 넘는 고려시대의 연꽃 씨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더 충격적인 일은 시료로 제공한 2개를 뺀 나머지 8개의 씨앗을 침종(浸種:씨앗 담그기) 했더니
5일 만에 이 중 3개가 발아(發芽)한 것이다.
그로부터 8일 만에 첫 번째 잎이 나왔고, 3개월이 지나자 여러 개의 잎이 자라나 정상적으로
성장했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0년, 기적처럼 1세대 연꽃이 첫 꽃을 피웠다. (* 위의 사진 참조)
700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연꽃이 시공을 뛰어넘어 이윽고 21세기에 꽃을 피운 것이다.    
아름다운 이 연꽃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자라던 연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현대의 연꽃보다 꽃봉오리가 크고, 색감이 곱고 선명했으며, 키도 훨씬 컸다. 

꽃잎 하단은 백색, 중단은 선홍색, 끝은 홍색으로 현대의 연꽃에 비해 길이가 길고, 색깔이
엷어,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연꽃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또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통연꽃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고려시대의 불교 탱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연꽃의 형태와 색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함안군은 이 연꽃에 함안의 옛 지명인 아라가야(阿羅伽倻)를 따서 "아라홍련(阿羅紅蓮)"이라
이름지었다. 흰색 연꽃은 "아라백련(阿羅白蓮)"으로 이름붙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1년에는 시배지에 이식된 150포기의 2세대 꽃들이 불꽃처럼 피어났다.
작년 2012년에는 3세대 꽃이 피어나서 이젠 아라가야의 옛 땅인 함안군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이몽(異夢)을 쓰느라고 하루에 20시간 씩 도서관에서 글을 쓰던 나는, 아라홍련을 보고
단숨에 반했다.
700여 년 동안 성(城)에 갇혀있다가 시절인연이 되어 꽃을 피운 연꽃을 보고,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위해 밤낮을 잊고 절차탁마(切磋琢磨) 중인 나 자신을 자연스럽게 투영시켰다.
연꽃의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종자불실(種子不失)이라고 한다.
실제로 연꽃의 씨는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보존되다가, 조건이 주어지면 다시 싹이 트기
때문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상징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연꽃을 가장 신성시하는 법화로 생각하는 것도, 유교에서조차 연꽃을 최고의 꽃으로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궁궐의 연못과 사대문 밖 큰 연못마다 연꽃이 만발했던 것은 불교의 영향이 아니다.

성리학이 지배한 유교에서 연꽃을 군자화(君子花)라고 하여 화중왕(花中王)으로 생각한 때문이다.

연꽃은 오랜 세월동안 썩지 않고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그때 꽃을 피우는 신비한 식물이다.

700년 동안 땅 속에 있던 연 씨가 발견된지 5일 만에 발아해 다음해에 기적처럼 꽃을 피운것처럼,

나도 철종을 150년 만에 재조명 하는 소설인 이몽이 그렇게 기적처럼 꽃을 피워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했다.

그래서 내 다음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바로 아라홍련이다.      
그리고 이몽을 알아본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 다음 블로그와 네이버 블로그 방문자 숫자가 글을 본격적으로 올리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거의 9,000명에 육박해가는 것도 바로 이런 인연 때문이다.
또 특이하게 내 블로그 방문자의 약 3분의 1 정도가 외국에 살고 있는 교민이거나 유학생이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수고로움을 매일 감수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방문자가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내 글만 기다리고 있으니 이를 어찌 하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독자들 성화에 못 이겨 매일 강박증에 시달리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은 아마도 나밖에

없을듯싶다.

때로는 독자들에게 "작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매섭게 일침을 놓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못함은

오직 하나... 나의 정 많은 성품에 기인한다. 특히 외국에 있는 독자들 때문이다.

 

알고 보면 연꽃 이름 하나에도, 작가가 사용하는 블로그 이름 하나에도, 이런 심오한 사연들이

비밀의 꽃처럼 숨겨져 있다.

다만, 당신이 몰랐을 뿐이다.

 

 

   *  이 글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