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는 데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다.
사료를 직접 확인하거나, 그 사실에 대해 정확한 취재를 하는 것, 그리고 전문가들이 발표한
논문을 읽거나, 그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고 역사적 사실을 종합해 다시 확인해 보는 것....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지만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오랫동안 훌륭한 학자들을 통해 한 가지 정확하게 배운 사실은 놀랍게도 ? (물음표)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누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일단 그 사실에 물음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
그의 주장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부화뇌동하지 않는 것...
그래야 비교적 올바른 역사적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학술발표와 논문을 통해 검증된사실,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학설에 대해서만 신뢰한다.
이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논지도 충분히 살피고, 자료로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
최종 결정한다.
나는 누군가 입에 침을 튀기며 선동적으로 주장하는 이념이나 사상, 음모론으로 접근하는 역사에
대해서는 그닥 신뢰하지 않는다.
이는 대부분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속셈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백 년 전의 역사에 대해서 개인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 재단해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책은, 종국엔 책 판매를 위해 독자들의 분노와 선동성을 이용했다는 게 밝혀지기 마련이다.
이는 한때 책은 많이 팔릴지언정 역사계에 전혀 파급력이 없다는 걸 보면 증명이 된다.
한데 이런 개인적인 주장이나, 인터넷 상에 떠도는 편협하고 잘못된 역사관련 글만 보고 진실처럼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개탄을 금치 못한다.
역사와 관련된 사료를 직접 확인하는 절차도 거치지 않고, 다양한 취재하지도 않고, 허접한 책이나
인터넷 기사, 까페에 올려진 글, 심지어 드라마를 보고 그걸 역사로 잘못 인식해 왜곡된 역사 내용을
진실처럼 계속 인터넷에 퍼나르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시키는 장본인임을 깨닫고 반성
하고 시정해야 한다.
특히 철종에 관한 인터넷 블로그 글들을 보면 개탄을 금치 못한다.
사료 확인도 안 하고, 취재도 안하고, 전문가의 자문도 받지 않고, 심지어 인터넷 검색을 하는 수고
조차 하지 않은 엉터리 글들이 베스트 글에까지 올라 많은 조회수를 자랑하며 역사 왜곡에 한몫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특징은 왜곡된 정보를 퍼날러서 편집해, 마치 자신이 전문가인 양 글을 쓴다는 것이다.
블로그 글 뿐만 아니라, 까페, 또 철종에 관한 엉터리 책을 내고 철종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때론 이들의 심리상태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150년 만에 철종을 재조명한 이몽이 나온지 이미 8개월이 넘었는데도, 틀린 정보들을 수정하지 않고
왜곡된 정보들을 계속 퍼 나르고 있다.
철종에 관해 가장 왜곡된 정보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철종은 본래부터 강화도에 살던 농사꾼이다?
철종은 본래 강화도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농사를 지은 적도 없다.
단지 강화도에서 14살부터 19살까지 유배생활을 했을 뿐이다.
형 원경이 역모 사건에 연루돼 처형된 뒤, 작은 형인 경응과 함께 1844년 강화도로 유배를 갔다.
강화도로 유배를 떠난 것은, 강화도가 왕족들의 유배지이기 때문이다.
정조 때 철종의 조부인 은신군(정조의 이복동생)과 그의 아들로 2살 때 아버지를 따라 강화도를
간 은신군 아들 전계대원군(철종의 아버지), 그리고 3대 째 철종 형제가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내리 했다.
강화도는 그밖에도 연산군, 광해군, 영창군 등 왕의 자리에서 폐출되거나 반정에서 밀려난 왕족
들의 유배지였다. 이는 한양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섬이라 격리시키기에 유리한 지리적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왕족들의 유배지로 선택됐다.
2. 철종의 형 경응(영평군)은 어린 나이에 일찍 졸했는가?
철종을 다루는 책들과 전에 나온 드라마,인터넷이나 블로그, 까페 등의 글에서 역사 왜곡이
가장 극심한 부분이 바로 철종의 형인 경응에 관한 부분이다.
경응을 설명하면서 모두 경응이 일찍 졸했다고 하는데, 철종의 형 경응이 바로 영평군이다.
그가 바로 누동궁의 주인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영평군만 쳐도 그가 1828년에 태어나서 1901년에 졸해 74세로 졸한 것이 확인된다.
한데, 철종을 다룬 모든 책이나 드라마 등에서 모두 똑같이 경응이 어린 나이에 졸했다고 나온
다. 이는 취재는 커녕,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엉터리 글들을 퍼 나르면서도 이들은 하나같이 철종에 대해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다.
엉터리 철종 관련 책과 인터넷에 나와 있는 철종 관련 글들, 전에 나왔던 사극을 만들었던
사람들 모두 똑같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역사 왜곡에 다름 아니다.
3. 철종의 3형제는 친형제들인가?
철종과 큰형 원경(회평군), 둘째 형 경응(영평군)은 모두 각각 이복이다.
이들은 친형제가 아니다.
철종의 큰형 원경은 완양부대부인 최씨 자식이고, 경응은 추증도 못 받은 이씨의 자식이며,
철종은 용성부대부인 염씨의 자식이다.
경응의 생모는 생몰연도도 확인되지 않은 의문의 인물로, 추증조차 되지 못했다.
철종의 생모 또한 왕을 낳았음에도 기록상 생몰년도가 확인되지 않은 의문의 인물이다.
이는 왕의 족보가 엄격하고 정확하게 기록되고 보관되는 것을 감안할 때, 조선시대 최고의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4. 철종은 안동 김씨의 욕심에 의해서만 택군됐다?
당시 선왕인 헌종과 6촌 이내에 드는 혈족 중, 생존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친척이 바로 7촌 아저씨 뻘인 철종이었다.
영조의 직계 혈손으로 유일하게 남은 자손이 바로 철종과 경응이었다.
풍양 조씨인 헌종의 모후 조대비와 당시 좌의정이던 이재 권돈인이 추천해 인손으로 정해진
이하전은 영조의 직계 혈손도 아니고, 족보를 따져도 엄청나게 먼 방계에 속한다.
때문에 순원왕후가 철종을 택군한 것을 단순한 권력욕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5. 왜 형인 경응을 놔두고 동생 철종이 택군됐을까?
역사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안동 김씨가 좀 더 어리숙하고 무식한 동생인 철종을 택군해
안동 김씨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어불성설이다.
택군 당시 철종의 나이는 19세, 형인 경응의 나이는 22살이었다.
조선시대에는 20세가 넘으면 양자로 들이지 않는게 관례였다.
철종은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자로 입적해 헌종의 후사를 이었다.
6. 철종은 일자 무식꾼이었나?
철종은 일자 무식꾼이 아니었다.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해서, 왕이 되기 전 어렸을 때 천자문을 뗀 것과 소학 중 일부만
공부한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왕이 된 후 2년 간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했다.
영의정과 삼정승은 물론, 경연청의 교수들이 총동원 돼 왕의 공부를 도왔다.
그 2년 동안을, 모후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한 것이다.
철종실록에는 왕이 언제 무슨 공부를 시작해서 언제 마쳤는지에 대해 모든 게 다 기록돼 있다.
왕이 무식해서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욕하는 것은 한마디로 무식의 소치이다.
격동의 시기에 철종이 제대로 정치적 역량을 펼치지 못한 것은 세도정치 때문이지, 결코
무식하거나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실록을 읽고, 사료를 확인하고, 취재를 하고, 인터넷 검색이라도 제대로 하면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들을, 하나도 확인하지 않고 아직도 엉터리 자료들을 계속 퍼나르면서 확대 재생산해 역사
왜곡을 부추기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개탄스럽기만 하다.
이몽(異夢)처럼, 정확한 취재와 사료에 입각해 쓴 소설이 나와도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틀린 정보들을 수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왕이었던 사람을 폄하하고,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못된 정보들을 수정하지 않고
역사 왜곡을 계속 일삼는 행위는, 결코 역사를 올바르게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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