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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신년(謹賀新年)

아라홍련 2013. 2. 10. 00:49

 

 

 

오늘은 설날이다.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다.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날을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연두(年頭), 연시(年始)로 불렀다.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시각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설날을 '낯설다'라는 어원에서 찾는 것이다. 

즉 설날을 "새해에 대한 낯설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 등 묵은 해에서 새로운 해로

바뀌는 통합의 과정이 아직 낯설다는 의미로 보는 시각이다.

두 번째는, '삼가다', 또는 '조심해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설날이

기인했다는 시각이다. 

설날을 특히 신일(愼日) 또는 근일(謹日)이라고 부르면서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경건하게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 번째는, '선날' 또는 '개시'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보게 되었다는 시각이다.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 되어 설날로 불러졌다고 본다.        

 

설날을 간혹 구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일제의 잔재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양력을 채택해 명절로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이 우리나라 국권을 

침탈 후, 우리 고유의 전통 명절인 설날을 자신들이 명절로 지내는 신정에 비유해

구정이라고 부른 것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음력 설인 설날을 추석과 함께 국가 최고의 명절로 지내왔다. 

허나, 국권을 침탈당한 후 일제에 의해 1895년부터 양력을 채택하게 되면서, 신정을 

새해로 맞이하게 됐다.

설날이 언제부터 한민족의 최대 명절로 자리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설날을 명절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역법(歷法)이 먼저 제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역법이 들어온 시기와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설날로 제정한 시기가  비슷할 것으로 추측

된다. 삼국지(三國志)에는 "이미 부여 족이 역법을 사용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을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에는 독자적인 명절인 '가위'(*가배(嘉俳)나 수릿날(음력 5월 5일, 단오) 같은

독자적인 풍속이 있었던 것을 볼 때, 우리 민족은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나 현재까지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다.    

 

중국에는 수서(隨書)를 비롯한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 우리나라의 설날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신라인들이 원일(元日)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도 있고,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제사> 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년)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년) 정월에는

조인 동명왕 사당에 배알했다."기록돼 있기도 하다.

또 신라 제 36대 혜공왕(765~780) 때에는 오묘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 오묘(五廟)란 태종왕, 문부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父 등 5명의 사당을

말한다. 정월 2일과 5일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볼 때, 이때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설날인 음력 정월에 국가적인 큰 제사를 지낸 것을 볼 때, 이 당시에 이미

오늘의 설과 같은 풍속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설날은 까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일제 강점기 때 나온 이 동요 때문에, 우리는 설날... 하면 까치를 떠올린다.

이 얘기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이다.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승려와 내통해 지아비인 왕을 해치려고 음모를 꾸몄다.

허나 왕은 까치와 쥐, 돼지, 용의 인도로 위험을 모면했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그날을 기념했지만, 까치를 기념할

날이 없었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소지왕이 설 바로 전날인 섣달 그믐날을 '까치의 날"'로 

지정해 "까치 설"로 명명됐다고 한다.

그래서 설 전날에 입는 설빔을 '까치 옷'이라고 부르면서 색동저고리는 '까치 저고리',

색동두루마기는 '까치두루마기'로 불렀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하늘색 등 5가지 색을 이어 붙여 만든 색동 옷을 입으면, 부정한

기운이나 나쁜 운세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민속 신앙에서 유래됐다.

5가지 색은 오행과 관련된 오방색에서 기인한 것이다.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 그림, 복조리 걸기, 윷놀이,

널뛰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문안비(問安婢)란, 예전에 출입이 부자유스럽던 부녀자들이 정초에 새해 문안 인사를

대신하러 보내던 여자 종을 말한다.

설날에는 차례를 지낸 뒤 일제히 어른들에게 절을 하고, 가족끼리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을 했다. 또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하기도 했다.

세배를 받은 이는 술과 다과로 접대하고,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었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 옷을 입는데, 이를 설빔(歲粧) 

이라고 불렀다. <열양세시기> 원일 조에 따르면 남녀 노소가 새 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

(歲庇陰) 즉, '설빔'으로 불렀다고 기록돼 있다.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는 정조 때의 문신인 김매순(金邁淳)이 1819년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을 말한다. 서울의 세시풍속 80여 종을 월별로 구분해, 해당 절후와 그에 따른

풍속을 간략히 적어놓았다. 

순조 때의 학자 홍경모가 저술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京都雜志)

등과 함께 우리나라 고사(古事)와 민속(民俗)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1985년에는 다시 음력 정월 초하룻날인 설날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설'의 명칭을 되찾았다.

90년 만의 일이다. 그때부터 설날엔 사흘간 휴무로 쉬기로 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날은 농경의례와 민간 신앙을 배경으로 한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우리나라에선 섣달 새벽에 가장 먼저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 해 풍년이 들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여겼다.

중국에선 까치를 희작(喜鵲)이라 하여 반가운 손님이나 소식이 올 것을 알리는 좋은 새로

인식됐다.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만큼, 이 날을  무탈하게 지내야 일년 365일이 평안하다.

지극히 조심하면서 가만히 들어앉는 날이라고 해서 "설날"이라고 불렀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몽의 독자들... 블로그를 매일 방문하는 열성적인 독자들... 그리고 나의 친구들... 

모두 은풍(殷豊)한 마음으로, 경건하게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더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기를 ...!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하며 꿋꿋이 생활하기를...!

특히 외국에서 설날을 맞이하는 독자들에게 작가의 따뜻한 설날 인사를 전합니다.

올해는 김시연 작가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온전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시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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