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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상응 동기상구(同聲相應 同氣相求)

아라홍련 2013. 1. 25. 04:37

 

 

 

참 희한한 일이다.

잠시... 몇 시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TV의 한 채널에서는 이몽(異夢)의 책임 감수를 맡았던 임용한 박사가 강의를 하고 있고,

동시에 다른 채널에서는 여러 박물관에서 강의를 들었던 모 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가

조선시대의 풍속화가인 신윤복의 풍속화와 춘화를 친숙한 목소리로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한 채널에서는 이몽을 감수하고 추천사를 썼던 임용한 소장과 김인호 교수의 강의가 몇 달째

계속 방송되고 있다. 난 집에서도 거의 매일 강의를 듣고 있는 셈이다. 

오랫동안 역사공부를 하다보니 이리저리 알게된 학자들이 TV에 나오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각각 다른 채널에서 잘 아는 분들이 동시에 강의하는 걸 보면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활자중독자, 일중독자들이다.

임용한 박사도 활자중독자이자 일중독자이다. 

그가 얼마나 왕성하게 역사서를 펴내는지,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내 다음 작품을 감수할 우리나라 역사계를 이끄는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인 저명한

역사학자도 전형적인 활자중독자이자 일중독자이다.   

방학인 딱 두 달 동안 학술지에 논문 4개를 발표해야 하고, 책을 한 권 써내야 한다.

일에 파묻혀 한마디로 옴짝달싹을 못한다.

원고 독촉에 시달려 전화도 받지 않고, 심지어 메일도 잘 열어보지 않는다. 

나도 유명한 활자중독자이자 일중독자이지만, 이 두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걱정스런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나와 연관을 맺고 있는 출판사 분들 역시, 활자중독자이다.

하는 일이 책 읽는 일이고, 취미도 책 읽는 일이니 당연히 활자중독자일 수밖에 없다.   

이몽의 서평을 쓴 문학전문 스타블로거와 몇몇 스타, 파워블로거들도 모두 활자중독자들이다.

난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그렇게 많은 서평을 쓰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나처럼 활자중독자로서의 연륜이 오래인 사람들은 아무 책이나 많이 읽고 서평을 많이 쓴다고

쳐주지 않는다.

무슨 책을 읽느냐, 어떤 수준의 책을 읽느냐,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어느 쪽이냐,

책을 어떤 방법으로 분석하느냐, 필력은 어느 정도되는가, 책을 제대로 읽고 서평을 쓰는가...

관심을 갖고 꼼꼼이 확인한다. 그들은 내 책을 분석하지만, 난 그들의 서평을 분석한다. 

이들은 때론 걱정이 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내가 블로그에 자료가 아닌,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그들에게 작가의 사상과 철학, 인생관과

가치관, 세계관과 우주관, 역사관 등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 

 

내 블로그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방문하는 독자들은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쓰는 문장을 좋아하고,  내가 구사하는 어조(語調)와 어투(語套)를 좋아한다.

또 내 글의 리듬을 좋아하고,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좋아하며, 내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역사와 고전(古典)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들은 내가 다루는 내용에 관심이 많으며, 이념과 사상에 편중되지 않고 비교적 균형있게

역사와 고전을 시사와 연관시켜 날카롭게 진단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 작가가 글에서 권력과 인간의 탐욕을 일관되게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며, 내가 올리는

사진들도 좋아하고 정겨워한다.     

특히 새벽 3시만 되면 정확히 내 블러그를 찾아오는 외국에 있는 독자들이 그렇고,

거의 매일 방문하는 세대별로 다양하게 분포하는 독자들 또한 그렇다.

난 그들을 위해 사진 한 장을 고르는 데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허투루 아무 사진이나 올리지 않는다.

글의 내용과 연관이 있거나 이미지가 잘 맞는 좋은 사진만 고르려고 애쓴다.  

어떤 땐 가장 적합하고 아름다운 사진 한 장을 고르기 위해, 몇 시간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 내 블로그를 매일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와 여러가지로 비슷한 면이 

많은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인생관이나 가치관, 철학이 상당 부분 비슷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취향과 성향에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소리,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작가의 영혼을 알아보고 글로 소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성상응(同聲相應)하고, 동기상구(同氣相求) 하기 때문이다.

'동성상응, 동기상구'라는 단어는 역경(易經)의 문언전에서 유래된 감응론(感應論)이다.

즉, "같은 소리는 서로를 감응시키고, 같은 기(氣)는 서로를 구한다."는 뜻이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대하며, 같은 기운을 서로 얻게 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같은 소리가 응하듯이, 같은 기질의 사람끼리 서로를 찾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子曰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 

(공자 말씀하시길... 같은 소리는 서로 상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얻으며

 물은 젖은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데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 성인이 온갖 물건을 보고 말하기를 '하늘이란 것은 

 위로 친한 것을 근본으로 하고, 땅이란 아래로 친한 것을 근본으로 하니 곧

 서로 그 무리를 따르는 것이다.)

 

독자들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다가와 만난 것이므로 내겐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이다.

시절인연이란, 불가의 선가(禪家)에서 사용하는 말로 '인연에도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

뜻이다. 세상 모든 일은 인연이 무르익어야 비로소 만날 수가 있다.

인연이 인연을 만나 성숙하여 과(果)를 이루는 때가 있으니, 바로 時節因緣이다.

불가에서는 만남을 인연(因緣)이라 하여 매우 소중히 여긴다.

금생에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 오백세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오백세라면, 인간의 세월로는 어마어마한 15,000년이다.

한마디로 전생에 엄청난 인연이 있어야지만 현생에서 옷깃 한 번 스치고 지나간다.

한데 책과 글을 통해 매일 블로그에서 만나니, 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인가. 

 

고대 그리스語에서 카이로스(Kairos)란 단어는 적당한 때, 최고의 순간을 의미한다.

여기엔 시절인연(時節因緣)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바로, 때가 무르익어 인연이 맞아들어가 만난 것을 뜻한다.  

내가 항상 독자들을 곡진(曲盡)하게 생각하고, 새벽에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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