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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도지죄(餘桃之罪)

아라홍련 2013. 1. 13. 02:55

여도지죄(餘桃之罪)...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먹인 죄" 

 

이 말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법가사상가인 한비(韓非)가 쓴 <한비자>의 설난편(說難編)에

나오는 글이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해,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극심함을 비유한 말이다.

한마디로 "사랑을 받는 것은 죄를 받는 근원이 된다."는 뜻이다. 

 

 

복숭아

 

 

춘추 전국시대인 위(衛)나라 때의 일이다.

남색을 즐기던 왕에게 특별히 사랑하는 미자하(彌子瑕)란 소년이 있었다.

용모가 얼마나 수려하고 자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왕의 총애가 실로 극진했다.

소년은 왕의 사랑이 영원할 줄 믿고, 배포가 점점 커지면서 기세등등해졌다.

어느 날,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은 '미자하'는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왕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에는 왕의 윤허를 받지 않고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발뒤꿈치를 자르는

중형인 월형((刖刑)을 받을 때였다.

'미자하'의 전후사정을 들은 왕은 죄를 내리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효심을

칭찬하며 흔쾌히 용서했다. 

왕의 소년에 대한 사랑은 한계가 없는 듯 날로 더하고, 달로 더해져만 갔다.

 

어느날, '미자하'는 왕과 함께 후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베어먹었다.

복숭아가 아주 달고 맛있자 소년은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사랑에 눈이 먼 왕은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미자하'의 충심을 기뻐하며 맛있게

복숭아를 먹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은 '미자하'도 어쩌지 못했다.

나날이 생기발랄함이 줄어들며 아름다운 자태가 그 빛을 잃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왕의 '미자하'에 대한 총애도 나날이 줄어들었다.

왕의 관심사는 좀 더 어리고, 좀 더 생동감 있는 미동(美童)에게로 향했다.

어느날 '미자하'가 작은 잘못을 저지르자 왕은 전과 다르게 대노했다.

왕은 지난날을 상기하며 '미자하'가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다고 질책한 뒤, 벌을 내렸다.

     "이 방자한 놈은 언젠가 과인 몰래 왕의 수레를 탔었고,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餘桃)를 왕에먹인 적까지 있다." 

바로 여기에서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라는 여도지죄(餘桃之罪)란 단어가 유래됐다.

한번 애정을 잃기 시작하자, 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까지 역린(逆鱗)이 되어 군주의 분노를

사게 된 것이다.

 

자허원군(紫虛元君)의 <성유심문(誠喩心文)>에서 가르치듯, 권세에 아부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뒤따른다. 사랑과 신뢰를 많이 받을수록, 더욱 근신하고 절도(節度)를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균형을 잡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은 이런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

탐욕이 양심의 눈을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인기와 사랑을 받으면 교만해져 사랑과 신뢰가 영원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로 착각하기에 이른다. 

그 끝이 어디일지, 어떻게 될지를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산은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보름달이 차오르면 다시 그믐달로 또 초생달로 변한다.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꽃이 만발하며, 가을에 열매를 거두고, 겨울을 맞이한다.

세상 모든 우주 만물은 이와 같은 조화와 질서 속에 존재하고 또 순환된다.

하지만 교만하게 살아온 자들은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끝에 다달으면 자신이 박해를 받는다며 오히려 세상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불평한다. 

삶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오만하고 방자하게 살아온 탓이다.

자신의 영혼을 성찰하지 않은 채, 허상과 같은 권력과 인기에 영합해 살아온 댓가이다.

 

구약에 나오듯,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다.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도 갖지 말고, 미운 사람도 갖지 말라고 가르친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은 자주 만나 괴롭기 때문이다.

이몽(異夢)에서는 지명선사'봉이'에게 "애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화상을 입게 된다."고 가르친다.

지나친 애욕이 섞인 사랑은 편견을 일으키고, 살아있는 생명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한다.

자비(慈悲)의 마음이 없는 애욕만 가득찬 이기적인 사랑은, 쉽게 싫증이 나고 고통과

미움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사랑에도 절도(節度)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는 근사록(近思綠)에도 나온다.

     方說而止   節之義也

여기에서 (說)은 열(悅)과 통하여 '기뻐함'을 뜻하고, 절지의(節之義)는 주역에 나오는

절괘(節卦)의 뜻이다.

기쁘고 즐거운 것만 추구하면 결과가 좋지 않으므로 지나침이 없이 적당히 하라는 뜻이다.

인간은 기쁨이 넘치면 항상 지나친 데로 흐르기 쉬어서 그 기쁨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때문에 끝을 보려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그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절제(節制)이다.

하지만 절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필요할 때 그칠 수 있도록 꾸준히 의식의 훈련을

해야만 절도의 올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자기 성찰을 꾸준히 하고, 자신을 극복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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