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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과 연꽃

아라홍련 2013. 1. 7. 22:19

 

 

 

 

 

        인간은 제각각 고유한 성향(性向)이 있다.

        나 또한 남들과는 다른 경향성을 보인다.  

        나는 사람의 목소리보다 악기의 소리를 더 좋아한다.

        인간의 목소리로 하는 노래 중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교향곡 같은 웅장한 음악은 질색이고, 두 세개의 악기가 협주하

        서정적인 음악을 들을 때 더 안정감을 느끼고, 영혼의 섬세한 떨림이 나타난다.

        고음의 바이올린보다 첼로나 비올라를 더 좋아하며, 소프라노보다는 메조소프라노를, 테너보다

        바리톤에 더 마음이 끌린다.

        인간의 몸에서 유일하게 영혼의 수준을 볼 수 있는 눈빛이 맑고 깊은 사람을 좋아하며, 아우라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 안정적이고 편안한 기운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며, 돈과 권력의

        앞에서도 염치와 체면,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본능과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어 타인에게 해를 주지않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들을 좋아하며, 강한 사람들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낄 줄 아는

        인애한 마음의 소유자를 좋아한다.   

        나는 꽃을 꽂을 때에도 꽃꽂이처럼 인공적인 선으로 멋을 내는 것을 싫어하고, 유리 화병에 꽃묶음을

        다발로 풍성하게 꽂아 자연스러운 선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선호한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아름답지만, 나는 특히 벚꽃연꽃을 사랑한다. 

        벚꽃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이다.

        1910년 대에 일본과 제주도를 오가며 무역을 하던 일본상인들이 제주도 산벚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묘목을 가져다가 도쿄의 우에노 공원에 심기 시작한 게 일본 벚꽃의 시작이다.

        담홍색(淡紅色) 겹벚꽃이 만발해 바람의 신(神)이 손짓할 때마다 꽃비가 흩날리기 시작하면, 일순간

        현실세계가 아닌 환상의 세계로 순간 이동된 듯 느껴져 감탄사가 제풀로 흘러나오고, 입가엔 저절로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반면, 연꽃은 벚꽃처럼 선호하여 좋아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마음이 이끌려 좋아한다.

        어쩌면 연꽃의 처렴상정(處染常淨)의 의미를 마음속 깊이 깨닫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연꽃은 깨끗한 물에서는 자라지 않고,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늪지나 연못에 살아 뿌리를 진흙뻘에

        두고 산다.

        하지만 결코 주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아서 자신의 꽃이나 잎에 조금도 더러움을 묻히지 않는다.

        오히려 수질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화과동시(花果同時)로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가 꽃 속에 자리잡는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인 '성자의 꽃' 법화(法華)로 불리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몽(異夢)에는 연잎밥, 백련차, 연화예, 연엽주 등 연꽃 관련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또 이런 문장도 주인공들의 화두처럼, 마치 이몽의 주제처럼 여러 번 나온다.

                             "인생은 연꽃잎에 내리는 빗방울과 같다..." 

 

        나는 연꽃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

        고고한 향기를 내뿜는 고결한 꽃과, 활여해 보이는 목청색(木靑色) 잎의 아름다움에만 반한 게

        아니다. 

        연꽃차, 연잎차, 연향차, 백련차, 연화예 등 연꽃과 연잎으로 만든 모든 차(茶)를 좋아한다. 

        연잎밥과 연근조림, 연근튀김, 연잎떡, 연꽃씨로 만든 음식들도 좋아한다.   

        심지어 연꽃 사진만 봐도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기분전환이 된다.  

 

        한데, 조선시대에도 나처럼 연꽃에 흠뻑 빠진 왕이 있었다.

        바로 조선 제 19대 왕인 숙종이다.

        숙종의 연꽃 사랑은 군왕 중에 단연 고금독보(古今獨步)이다.  

        연꽃을 정말 좋아한 숙종은 창덕궁 안의 모든 연못에 연꽃을 심게 했다.

        그것도 부족해 1692년(숙종 18년), 창덕궁 후원 어수문의 동쪽 연못 한가운데에 인공섬을 쌓고

        정자를 지은 뒤, 연못에 연꽃을 그득히 심었다.

        그리고 애련정(愛蓮亭)이라 이름 붙였다.

        숙종은 어제기(御製記)를 통해 애련정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견축 경위를 이렇게 밝혔다.

 

                 정자를 애련으로 이름한 것은 그 미세한 의미를 잘 보여준다. 대체로 보아

                 사계절의 꽃들이 심히 변화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함에는 각기 치우친

                 바가 있으니, 은일(隱逸)의 꽃인 국화는 처사 도잠(陶潛,도연명)이 사랑하였고,

                 부귀의 꽃인 모란은 당나라의 여러 사람이 사랑하였으며, 군자의 꽃인 연꽃은

                 원공(元公, 주돈이) 주무숙이 사랑하였다.

                 좋아함은 비록 같을지라도 마음에는 얕고 깊은 다름이 있으니, 내 평생 이목(耳目)을

                 부리지 않고 홀로 연꽃을 사랑함은, 붉은 옷을 입고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않고, 지조가 굳고 범속을 벗어나 맑고 깨끗하여 더러움을 벗어난

                 것이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것이 새 정자 이름을 지은 까닭이거니와 수 천년 동안 나와 더불어 뜻을 같이하는

                 이가 어찌 주렴계(周濂溪) 한사람에 그치겠는가?

 

        역사와 고전을 심도있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숙종의 어제기가 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

        (愛蓮說)에 근거했음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飜

                  (물과 땅에서 나는 초목과 꽃송이 중, 사랑스러운 것들이 아주 많다.)

                  晉陶淵明獨愛菊  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

                  (진나라의 도연명은 국화를 사랑했고, 당나라의 이태백부터는 세상사람들이

                  모란을 사랑했다.)

                  余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지만 요염하지 않고)

                  中通外直  不蔓不枝 (속은 비었지만 밖은 곧으며, 줄기가 넝쿨지지 않고 가지치지 않으며)

                  香遠益淸  亭亭靜植 (향은 멀수록 더욱 맑고 당당하며, 고결하게 서 있고)

                  可遠觀而不可褻翫焉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음을 좋아한다.) 

                  余謂  菊  花之隱逸者也  牧丹  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 

                  (나는 이르건데 국화는 꽃의 은자이고, 목단은 꽃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의 군자라 하겠다.)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아! 국화에 대한 사랑은 도연명 이후 듣기 드물고, 연꽃에 대한 사랑은 나와 같지 않은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牧丹之愛  宜乎衆矣 (목단에 대한 사랑은 마땅히 많으리라.)

 

        숙종의 연꽃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707년(숙종 33년)에는 창덕궁 후원의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약 300평 넓이로

        연못을 파 태액지(太液池)라 이름붙인 뒤 이를 중심으로 건물들을 지었다.

        평지로 터진 연못의 동쪽에 잘 다듬은 큰 돌을 쌓은 뒤 우뚝하게 건물을 세워 영화당(暎花堂)이라

        이름 짓고, 연못 남쪽에는 물에 두 다리를 담근 정자를 지었다.  

        그리고 연못에 연꽃을 가득 심은 뒤 왕은 정자에서, 또는 연못 주위를 거닐며 연꽃을 감상했다. 

        이 연못이 '창덕궁 후원의 꽃'이라 불리는 지금의 부용지(芙蓉池)와 부용정(芙蓉亭)이다.

        조선 제 22대 왕인 정조가 연꽃이 만발한 태액지를 보고 감탄해 연꽃 (芙), 연꽃 (蓉)자를 써서

        부용지와 부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연못에 왕의 사랑을 흠뻑 받는 연꽃이 만발하면, 연향(蓮香)이 창덕궁 후원에 얼마나 복욱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모든 군왕이 자연을 사랑했지만, 특히 숙종은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연하지벽

        (煙霞之癖)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연꽃이 5세기 경 일본의 웅략왕(雄略王) 때, 중국의 연꽃이 조선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 때, 한반도에는 5세기 이전에 이미 연꽃을 널리 재배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연꽃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때, 불교가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연꽃도 함께

        들어왔을 것으로 유추된다.

 

        그렇다면 사대부나 민초들은 어떻게 연꽃구경을 즐겼을까?

        사대부들의 저택에는 풍수지리 때문에 집 앞에 큰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어 연향을 즐겼고, 한양이나

        부근에 사는 민초들은 성문 앞에 있는 큰 연못에서 연꽃구경을 했다.

        창경궁 동쪽 연동(蓮洞)의 동지(東池)와, 숭례문 밖 남지(南池), 돈의문(敦義門,서대문) 밖의 모화관

        서지(西池) 등이다.

        모화관(慕華館)은 조선시대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지'가 연못의 규모가 가장 크고 연꽃이 다복다복해 최고의 명승지로 꼽혔다.

        특히 천연정(天然亭)이란 아름다운 정자가 있어서 연꽃이 만발하는 여름이 되면 사대부나 민초를

        불문하고 모화관 옆으로 몰려들어 축제를 벌이듯 연꽃구경을 하는 장관이 만들어지곤 했다. 

 

      이몽(異夢)에서는 철종이 도연명이 좋아한 은일화(隱逸花)인 국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의 성품과 고단했던 삶을 돌이켜 볼 때, 화려한 목단화나 연꽃보다는 국화(菊花)를 좋아하는 게

       더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모상궁은 왕의 거울처럼 맑고 물처럼 멈춘 단엄침중한 성품을 존경했다.

               이는 오탁악세에서 살아남은 생사의 기로를 넘어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이었다. 

               보모상궁은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왕을 위해 세수간 모서리마다 큰 백자항아리를

               갖다 놓고, 매일 꽃을 흐드러지게 꽂아 놓았다." (이몽1부, 201p)  

 

              "세수간 안에서 국화꽃 향기가 진동했다. 목간통 물 위엔 색색의 국화 꽃잎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왕의 몸에도 군데군데 국화꽃이 피었다. 은일화를 좋아하는 왕을 위해 보모상궁이

              큰 백자 항아리에 최고 품종의 백학령과 취양비, 금원향을 흐드러지게 꽂아 놓았다.

              그러나 왕은 말이 없었다. 슬픈 표정으로 혼을 빼놓은듯 만단수심이 깊었다."

                                                                               (이몽 2부, 282~283p)

 

        사랑하는 봉이를 강화도에 놔둔 채, 다른 여인과 가례를 올리기 위해 철종이 목욕을 하는

        장면이다.

        철종의 애절한 슬픔과 흐벅지게 핀 색색의 국화꽃이 큰 대비를 이루며 성심의 애통함을

        더욱 고조시키는 대목이다.

        꽃을 좋아함에도, 음악을 좋아함에도, 인간의 각각 다른 성품과 취향, 경향이 모두 드러나니

        참으로 신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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