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 Gibbs의 작품>
차도산전 필유로(車到山前 必有路)
(산 앞에 이르러 길을 찾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
이몽(異夢)엔 이런 글이 나온다.
그제야 모든 것이 보였다. 삼라만상 모든 세상 이치가 다 한눈에 들어왔다.
종묘의 창엽문이란 현판도 떠올랐다.
개국 초,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종묘의 주춧돌을 놓을 때 스물여덟 칸으로
정한 것도 생각났다.
원범이 25대 왕이 되었으니 조선엔 앞으로 세 명의 왕이 더 나올 것이다.
내 아들 '재황'이 왕이 된다면 그의 아들도, 아들의 아들도 왕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 후손들로 조선시대를 마무리 짓게 된다...
흥선군 눈빛이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명멸했다.
꼭 살아남아야 한다. 기필코 살아남아야 한다.
만에 하나 어느 것 하나라도 안동김씨 귀에 잘못 들어가는 날에는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동요와 관상,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문제가 됐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삼도천을
건널 수 있다.
'이를 어쩐다...?'
가부좌를 튼 다리를 좌우로 흔들던 이하응이 큰 소리로 외쳤다.
"차도산전 필유로(車到山前 必有路)!
수레가 산 앞에 이르면 반드시 길이 있다!"
<이몽 1부, 297p>
나는 이 문장을 오래전, 사부(師傅)로부터 배웠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추석 명절, 사부가 엽서에 명절 축하인사를
보내왔다.
엽서엔...
차도산전필유로(車到山前 必有路),
수레가 산 앞에 이르면 반드시 길이 있다.
이 글만 적혀있었다.
명절 인사 엽서인 것을 볼 때, 내게만 보낸 건 아닌 듯 싶었다.
중요하게 기억되는 주변사람들에게 명절인사를 엽서로 대신한 것 같았다.
보내는 사람들에게 각각 필요한 알맞는 내용을 덕담으로 보낸 것으로 추측됐다.
이 문장이 나오는 원래의 詩는 다음과 같다.
山窮水盡疑无路 (산이 다 하고 물이 다 해서 길이 없는가 했더니)
柳暗花明又一村 (우거진 버들 너머 밝게 꽃 핀 마을이 또 있네)
山外有産山不盡 (산밖에 산이 있어 산은 다함이 없고)
路中多路路無窮 (길 가운데 길이 많아, 길은 끝없이 이어지네)
人間事塞翁之馬 (인간지사 새옹지마라...)
車到山前必有路 (산 앞에 이르러 길을 찾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
차도산전 필유로(車到山前必有路)...
이 문장은 '수레가 산 앞에 이르면 반드시 길이 있다.', '산 앞에 이르러 길을 찾으면
반드시 길이 보인다.'는 뜻이다.
멀리 산을 바라보면 도저히 길이 없을 것 같지만, 막상 산 앞에 도착해 길을 찾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는 사부(師傅)의 도저하고 웅숭깊은 가르침이 엽서에 담겨 있었다.
내게 꼭 필요한 격려와 용기를 주려는 사부의 깊은 뜻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가고자 하는 길을 향하여 열심히 계속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지금은 너무 까마득해
길이 없는 듯 어룽어룽 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눈 앞에 길이 나타날 것이란
사부의 격려는 내게 큰 힘이 됐다.
길은 분명히 나타날 것이니 절대로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가던 길을 계속 꿋꿋이
가라는 사부의 가르침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아 엽서를 가슴에 품고 한동안 숙연해졌다.
사부가 전에 가르쳐 준 "伏久者 飛必高"(오래 엎드려 있으면 반드시 높이 난다.)와
같은 맥락이었다.
그때 내 처지가 그렇게 신산했다.
작가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글을 잘 쓰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지를 못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이는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간과 공간, 언어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그냥 생각없이 글을 써대는 자신감 부족 때문에 생긴 고초였다.
이는 정체성이 흔들린 일이므로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사부의 가르침과 격려, 성원으로 간신히 버티어냈다.
얼마전 사부에게 '伏久者 飛必高'와 '車到山前 必有路'에 대해 질문을 했다.
한데, 사부는 그때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가르침을 준 것도, 그런 엽서를 보낸 사실도, 당최 알지를 못했다.
하지만, 난 십수 년도 더 지난 그 엽서를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사부의 가르침, 격려, 성원을 하나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미래를 늠름하게 기다리며,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고시공부처럼 해왔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드디어 내 눈앞에 펼쳐진 문을 발견했다.
그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와 다시 6년 동안 극번한 시간을 보낸 뒤, 이몽(異夢) 1,2권을
출간했다.
쓰고자 하는 시대의 시간과 공간, 언어, 역사까지 완전히 장악한 뒤였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품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난의 시기는 있다.
산에 막힌 듯, 길이 없는 듯, 세상에 홀로 내쳐진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때는 뜻을 펼칠 알맞은 시기가 아니다.
아직 적당한 때가 아니다.
준비가 덜 된 것이다.
그때는 방황하지말고 더 공부하고... 더 준비하고... 더 치열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진정한 자신감은 최선을 다해 모든 준비가 다 끝났을 때, 비로소 하늘에서 허락하는
선물이다.
그게 바로 관록(貫祿)이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일하고, 준비하고, 고초를 겪어내며 '세월 위에 쌓인 위엄과 권위'가
바로 관록이다.
어려운 시기를 끝내 견디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포기하거나 좌절하면, 결코 꿈을 이루지
못한다.
자신의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별에 와서 자신의 숙제가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적당히 삶을 즐기다 가는 것은
한마디로 실패한 인생이다.
그런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굳은 심지(心志)와 근성(芹誠)이 필요하다.
때론 소나기를 맞고, 하늘에서 번개가 쳐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굳건히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강한 근성(根性)이 필요하다.
시련은 영혼을 더욱 발전시키는 또 다른 계기이다.
고난을 모르고 산 삶은 결코 좋은 인생이 아니다.
좌절이나 절망을 겪어보지 않고 오로지 탄탄대로만 걸어온 순탄한 인생에게는, 온갖
시련을 겪어내며 꿋꿋이 일어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지혜나, 깊은 성찰, 통찰의
능력이 없다.
... 이건 결코 돈이나 권력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고초를 겪지 않고 승승장구한 사람들에겐 특유의 오만함과 방자함이 인생을 지배한다.
삶의 가치나 타인에 대한 연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이 별에 태어난 자신의 숙제가 무엇인지 생각조차 안한 채, 탐욕과 쾌락을 향해서만
질주한다.
그래서 삶 자체가 망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고초를 겪지 않고도 슬기와 지혜를 얻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물론 있다!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그 안에서 지혜로운 삶의 방법과 인간의 정도(正道), 성찰과
통찰의 능력을 습득하면 된다.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정립시키면 가능하다.
하지만 간접경험이란 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
때문에 끊임없는 치열한 독서와 자기 절제, 깊은 사유(思惟)가 필요하다.
좋은 책을 제대로 찾아내 오랫동안 읽고 가슴에 품으면, 그때 비로소 지혜안(知慧眼)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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