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게 책과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거친 세파에 흔들려 헐벗겨진 나목처럼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을 듯하다.
내게 책과 음악은 지친 영혼과 곤고한 삶을 위무(慰撫)하는 안식처이자 보호자...
때론 도피처...
평생을 손잡고 함께 하는 영원한 친구이다.
며칠 째 공부와 일에 시달려 종일 극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때, 한줄기 빛처럼 내 가슴을 향해 환한 빛을 내뿜는 기타 선율...
계절 탓인지 슈베르트의 가곡 '밤과 꿈(Nacht und traume)'의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이번엔 가곡으로 바꿔 다시 들어보았다.
노래의 텍스트는 詩人 마테우스 폴 콜린(Matthaus von collin)이 지었다.
도이취 번호 827번이다.
밤과 꿈
달빛이 세상을 두루 비치는구나.
성스러운 밤이여, 그대 조용히 잠겨 있구나.
온갖 꿈들이 출렁이며 밀려오는데
사람들의 조용한 가슴을 지나서
즐거움들 속에서 꿈의 소리를 듣다가 부르는구나.
낮이 바야흐로 잠을 깨니
나에게 돌아오라, 성스러운 밤이여!
고운 꿈들이여, 다시 돌아오라.
정열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은 태양을 사랑한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은근하고 미묘한 달빛과 별빛을 더 사랑한다.
태양이 뜨는 낮보다, 달과 별이 빛나는 밤의 생명력에 더 매혹된다.
그들은 밤을 통해 명상하고... 사랑을 나누며... 기억 속에 아슴아슴한 사람들을
회상한다.
달밤의 적요(寂寥)와 신비경은 멀리 떨어진 연인들을 사랑의 끈으로 이어주고,
상상의 공간 속에서 함께 머무르게 만든다.
밤은 침묵의 페이트런(patron)이며, 달은 인생의 다정한 길동무이다.
선율에 젖어 카모마일 차를 간만에 머그컵이 아닌, 장미가 만발한 제대로 된
찻잔에 마셔본다.
그윽한 음률에 취하다보니, 詩 하나가 어느새 절로 떠오른다.
겨울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은 없어도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 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조병화 시인)
가곡의 계절이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어울리는 시절이 돌아왔다.
이젠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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