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을 줄 예상했었다.
이몽을 읽은 독자들은 작가가 독실한 불교신자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작품 전체를 흐르는 불교철학과 사상, 그리고 혜각사와 지명선사, 처사, 보살 뿐만이 아니다.
왕의 친구인 동영인 혜각사에서 자랐고, 왕의 호위무사가 되기 전까지 가람에서 생활했다.
봉이는 혜각사 지명선사의 향 제조 수제자이며, 보살과 분애도 혜각사에서 산다.
소설에 나오는 많은 장면이 혜각사를 무대로 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불교 관계자들이 이몽(異夢)을, 불교정신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한 소설로 꼽았다.
이몽을 소개한 불교 관련 신문도 불교신문, 법보신문, 현대불교신문, 미디어붓다 등
4개 신문이나 된다.
이몽 두 권을 완전히 읽고 서평을 신문에 게재한 미디어붓다 대표기자는 그 자신도
책을 여러 권 베스트셀러에 올렸던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이몽을 상찬(賞讚)하는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작가의 종교가 불교일 것이라는 데에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작가가 예전에 불교방송 작가였다는 헛소문도 돌았다.
하늘의 1년, 즉 신들의 1년은 지구의 3,600년쯤 되는 셈이다.
조선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들은 고대 근동지방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점토판에 하늘의 1년, 즉 1샤르는 3,600년이라고 적혀 있다고 전했다.
하늘의 시간으로 보자면 인간의 일생은 찰나생멸이자 찰나무상이다.
찰나마다 만물이 생겼다 소멸하고, 소멸했다 다시 생성된다.
때문에 순간의 희로애락에 연연해하지 말고 좀 더 큰 꿈, 윤회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용맹정진해 유희삼매에 거해야 한다.
<이몽 1권 259p>
예민한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어? 작가가 불교철학만 강조하는게 아니라 천주교 얘기도 하네.
생각이 꽤 균형있구만."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데, 최근 작가의 블러그 글을 읽었던 독자들은 트라피스트 수도원... 토마스 머튼 신부...
헨리 뉴엔 신부... 관상생활 동경... 등의 내용을 읽으며 "어머나, 세상에! 작가가 불교신자가
아니라 천주교 신자였네?", "맞아, 어쩐지...작가가 불교신자이면 불교사상을 강조하느라
자칫 어색할 수도 있는데, 다른 종교 신자인지라 더 자연스럽게 불교를 표현한 거야."
... 이런 반응들을 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자기가 믿는 종교나 사상을 독자들에게 강요하거나 좋게 표현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면, 예민한 독자들은 글에서 묻어나는 편협한 파동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불편해한다.
아하, 이몽을 쓴 작가는 불교신자가 아니라 놀랍게도 천주교 신자였구나...
이렇게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문득 마음에 걸리는게 하나 있다고 했다.
작가의 블로그 글 '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에 "향 한자루를 피워 올렸다."라는 문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체 작가의 종교가 뭐란 말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궁금해 하던 독자 중 한 명이 드디어 내 종교를 물어왔다.
나는 한때 서양사에 흥미를 느꼈다가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히 가장 위대한 수메르 학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크레이머(S.N.kramer)가 그동안 수메르에서
발견된 수많은 문화적 유산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발표한 책을 접하고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근동인 메소포타미아에서 5,800년 전 시작된 수메르 문명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무슨
일들이 있었던지를 알게 되면서, 상상을 초월한 생활상과 역사의 일정한 패턴, 반복, 순환에
감탄했다. 내가 한동안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 등 각국의 크고 작은 박물관들을 찾아다닌
것도 그때문이다.
나는 책이나 자료를 접할 때 신뢰성과 타당성을 중시하는 편이다.
어떤 학자가 아무리 거품을 물고 주장을 해도 신뢰성, 타당성,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자료를 신뢰하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수메르의 기록들은 각국의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했고, 대부분 학문적으로 밝혀진
터라 신뢰성에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수메르에서 3,600이란 숫자는 커다란 원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샤르(shar)라는 형용사로 사용되기도 하고, 완전한 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3,600년은 인간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문명 발달이 각각 3,600년으로 나뉘어 크게 3단계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BC 11,000년 경의 중석기 시대, 기원전 7,400년 경의 토기시대, BC 3,800년 경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수메르 문명은 놀랍게도 각각 3,600년의 기간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하늘의 1년이 인간의 3,600년이라는 수메르의 기록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실상 인간이 생각하는 1년이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같을 수가 없다.
수메르의 기록들을 공부해보면, 세상과 종교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데, 불교에서도 똑같이 인생을 한 나절의 꿈... 찰나무상... 찰나생명이라고 얘기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刹那)는 75분의 1초를 말한다. 극히 짧은 순간이다.
시간에 관한 수메르의 기록들과 불교의 가르침이 같은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 타 종교에 대해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지, 다른 점을 찾아내서
타 종교를 비난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안 하게 된다.
수메르의 <지혜의 서판(Wisdom Tablet)>이라는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적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면, 너의 적도 선으로 갚을 것이다.
적에게 정의를 베풀라!
보시(布施)를 원하는 자에게는 먹을 음식과 마실 음료를 주어라.
남을 돕고 선을 행하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이와 똑같이 가르친다.
믿는 방법만 다를지언정, 진리를 가르치는 내용은 똑같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가르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내 종교를 말하라고 한다면 초교파라고 답하겠다.
나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그리고 모든 종교가 나뉘어지기 훨씬 전 태초에 존재하던,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최고의 신을 경외하며, 사랑하고, 그에게 기도한다.
향은 이몽에도 나오지만, 유교의 시대인 조선시대에도 사대부들이 분향묵좌를
할 때 사용했다. 불교 뿐만 아니라 천주교에서도 미사 때 향을 피운다.
진신대부(搢紳大夫)들처럼 나도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또는 마음을 침잠시켜
깊이 안연(晏然)하기 위해, 때론 기분전환을 위해 향을 피워 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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