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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게 아름답다...

아라홍련 2012. 11. 11. 18:56

한약 때문에 끊었던 커피를 간만에 다시 마셨다.

베란다 창문 밖으로 오색찬란한 단풍잎이 나붓거리는 것을 보자 커피 생각이 절로 났다.

에스프레소를 마실까, 탄자니아 피베르를 마실까, 코스타리카 따라쥬를 마실까...

한동안 망설이다 결국 유기농 커피를 선택했다.

유기농이라는 단어 속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마신다는 죄의식을 살짝 감춘

내 얄팍한 술수가 담겨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은 냄새로 먼저 커피를 마신다.

머신기에서 커피가 추출될 때의 복욱한 향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집안에 금방 커피 향기가 진동했다.

커피 한 잔을 머그컵에 가득 담아 베란다로 나갔다.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하루종일 세차게 팔을 흔들며 하늘을 호령해,

오색 단풍이 꽃비처럼 난분분 흩날렸다.

허나, 지금 꼿꼿이 선 채 머리를 흩날리는 단풍나무들의 아름다움은 담염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처염(凄艶)한 아름다움이다.

 

처절하게 아름답다.....

 

농익은 찬란함 속에선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는 처절함이 슬픔처럼 배어나왔다.

극미한 아름다움과 섞인 묘한 슬픔 속엔 만추의 스산함과 을씨년스러움이 숨어있었다. 

나는 냉염한 아름다움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잔조(殘照)에 붉게 물들었던 단풍잎들은 먹장처럼 번진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어젠 박물관대학을 다녀오다 버스 속에서 졸아 종점까지 다녀왔다.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운전기사가 깨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불빛도 없는 한적한 공터였다.

종점 버스 정류장을 훨씬 지나 그 버스들만 대기하는 임시 차고지 같은 곳이었다.

어디인지 종잡을 수도 없는 한적한 장소였다.

인적도 없고, 택시도 다니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당황해서 왔다갔다 하다가 겨우 다음 버스를 타고 되돌아 왔다. 

한 시간 이상을 낭비한 셈이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 생긴 일이다.

한약 때문에 어제 처음 박물관대학에 커피를 안 가지고 갔다가 생긴 사단이다.

어제 일을 생각하니 일순간 충격이 되살아나며 다시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다시 커피 한잔을 내렸다.

짙은 향기가 순식간에 집안을 가득 채운다.

행복이란...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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