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뜬금없이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생각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정말 섬광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트라피스트 수도원!
수십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고 잊고 살았는데, 촌초(寸秒)에 봉쇄수도원 생각이
뇌리를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혹여, 지친 내 영혼의 방어기제가 발동해 촌음에 과거로의 여행을 했던 것은 아닐까...
젊은 시절 한때,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열렬히 갈망한 적이 있었다.
토마스 머튼의 영향 때문이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베네딕또의 규율을 따르는 가장 엄격한 봉쇄수도원이다.
노동과 침묵, 기도, 홀로 있음의 단순한 일과로 하루가 짜여진 수도자들의 공동체이다.
말을 전혀 하지않고 수화로만 대화를 나눈다.
당시 한국에는 트라피스트 수녀원이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 선택에 제한이 많았다.
그래서 유럽쪽 트라피스트 봉쇄수도원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도 했었다.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이 얼마나 강했던지, 꿈만 꾸면 수도원에 있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시도때도 없이 잠을 자곤 했다.
조금이라도 더 수도원에 있는 꿈을 꾸기 위해서였다.
내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토마스 머튼, 즉 루이스 신부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 게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신부이자 당대의 저명한 작가였다.
나는 그의 자서전인 칠층산을 읽고 트라피스트 수녀원에 들어가 소박하고 단순한
관상생활(觀想生活)을 하기를 열망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활자중독자로 책에 심취했던 나는 문학서 빼고는 거의 대부분을
영성에 관한 책들을 읽는 데 보냈다. 음악도 그레고리안 성가나 중세 음악을 주로 들었다.
그러나 신은 나를 수도원 대신, 작가의 길로 인도했다.
그후로는 쭈욱 잊고 살았는데 뜬금없이 새벽에 트라피스트 수도원 생각이 나다니...
정말 가경(可驚)할 만한 일이다.
오랫만에 '칠층산'을 서가(書架)에서 찾았다.
그동안 너무 세월이 많이 흘러, 찾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20여 년 전에 구입했던 책이다.
종이 색깔은 누렇게 변해 있었지만, 붉은 밑줄을 치고 형광펜을 가득 그은 책장은
지금 봐도 익숙하기만 하다.
시간나는 대로 책을 다시 읽으며 토마스 머튼의 삶의 여정을 순정한 순례자처럼
따라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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