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범이 택군돼 봉영사절과 함께 강화도를 떠나 도성을 향하다가 김포행궁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갑작스레 변한 환경에 놀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옛일을 회상하는 장면 중 한
대목이다.
형과 함께 방 안에 누워 있으면 멀리서 들려오던 파도소리...
뜰 앞에 서 있는 아람드리 단풍나무 위에서 밤마다 수다를 떨던
솔부엉이와 두견새, 소쩍새 소리...
장지문을 뒤흔들며 스쳐 지나가던 갯바람 소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에는 처마 끝에서 항아리 속으로 담방담방
떨어지던 명징한 물방울 소리...
이들은 묘하게 뒤섞여 단숨에 꿈길로 인도했다.
자몽해지면 어김없이 큰형의 자장가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잠아! 잠아! 어서 와라. 잠아! 어서 와라.
내 막둥이 동생에게로...
잠아! 어서 원범에게로 와라.
와서 잠 못 드는 내 동생 눈을 감게 해다오.
별님이 그만 잠들라고 웃으신다.
달님이 그만 잠들라고 웃으신다.
자장, 자장, 내 막둥이 동생!
나쁜 꿈은 저리 가고, 좋은 꿈만 찾아오너라!
<이몽 1부. 151~152p>
독자들 중에, 아이를 재울 때 이 자장가에 아기 이름을 붙여 노래를 불러준다고 하는
고마운 팬들이 있다.
이 자장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나는 이 자장가를 만들 때 1877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근동의 수메르 유적지에서
발굴된 기록 중 하나를 참고했다.
이 유적지는 그후 56년이 지난 1933년까지도 발굴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
기원전 3,000년 경 수메르 지역의 유적들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의 기록들이다.
이 기록들은 점토서판(粘土書板)에 쐐기 문자(litteraecunetae)로 새겨져 있었다.
수메르(Sumer)는 구약 창세기가 '그가 다스린 나라의 처음 중심지는 시날(Shinar) 지방 안에
있다.'고 기록한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이름이다.
'시날'은 바로 구약(舊約)이 '수메르'를 부르는 이름이다.
인류 최초의 수메르 문자가 해독되고, 수메르 문명이 아카드-바빌로니아-아시리아 문명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도 점차 활기를
띠게 되었다.
수메르 문자가 해독 가능하게 된 것은, 유적지에서 발굴된 세로로 길게 적힌 명판들 때문이다.
명판(名板)은 독일학자 '그로테펜트'와 영국학자 '콜린스' 외 3명의 학자에 의해서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서 수메르語를 연구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아카드어-수메르어>사전이었음이
밝혀졌다.
특히 프랑스와 영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많은 연가(戀歌)들이 발견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픈 아이에게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였다.
고대 수메르 유적의 한 점토판에는 이런 자장가가 쓰여져 있었다.
잠아 어서 와라, 잠아 어서 와라, 내 아들에게로.
잠아 어서 내 아들에게로 와라.
와서 아이의 잠 못 드는 눈을 잠들게 해다오.
아픈 내 아들아, 내 마음도 아프구나.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별을 본다.
새 달이 네 얼굴에 비친다.
네 그림자도 너를 위해 눈물을 흘리겠지.
이제 잠 속으로 가거라.
성장의 神이 네 지원자가 되기를...
하늘에 네 천사를 갖기를...
오랫동안 네가 행복하기를...
너를 믿는 아내를 갖기를...
미래를 짊어질 아들을 갖기를...!
아파서 밤새 보채는 아픈 아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자장가를 불러주던 한 젊은 여인의
애절한 마음이 글귀 하나하나에서 묻어난다.
기원 전 3,000년 경의 엄마 마음이지만, 지금의 엄마 마음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나는 이 기록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의 물결을 느꼈다.
그래서 이를 참고해 이몽(異夢)에서 큰형 원경이 원범에게 불러주던 자장가를 만들었다.
잠아! 잠아! 어서 와라. 잠아! 어서 와라.
내 막둥이 동생에게로...
잠아! 어서 원범에게로 와라.
와서 잠 못 드는 내 동생 눈을 감게 해다오.
별님이 그만 잠들라고 웃으신다.
달님이 그만 잠들라고 웃으신다.
자장, 자장, 내 막둥이 동생!
나쁜 꿈은 저리 가고, 좋은 꿈만 찾아오너라!
작가는 아는만큼 쓴다!
독자도 아는만큼 보인다!
... 그리고 아는만큼 감동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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