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글쎄, 이선희 노래가 아니라니까요.

아라홍련 2012. 10. 25. 18:35

               소슬한 달밤이면 그대 무슨 생각 하시나요? 

               뒤척이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님이시여! 제가 드린 말들도 기억하시나요?

               이승에서 맺은 인연, 믿어도 좋을지요.

               멀리 계신 그대생각, 해도해도 모자란듯.

               하루에도 제 생각 얼마만큼 하시나요?

               바쁠 때 만나자면 싫어할까, 기뻐할까...

               참새처럼 조잘대도 여전히 정겨울까요?

 

                                       <이몽 2부 98p>

 

 

이 부분은 일패기생인 천향이 장안 최고의 기방인 모란방에서 흥선군에게

황진이의 시로 만들어진 정가(情歌)를 불러주던 대목이다.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게 된 흥선군에게향은

짙은 연모의 감정을 황진이의 시에 빗대어 만고절창으로 불러준다.     

풍진세상(風塵世上)을 냉소로 바라보며, 헌헌장부나 고담준론을 펼치는 학덕있는

은자를 막론하고 남자들을 손 안에서 쥐락펴락 가지고 놀았던 황진이...

사랑과 학식에 두루 깊었고, 은애옥(恩愛獄)의 허망한 인연도 누구보다 깊이 

깨달았을 그미... 

그런 그미가 한때 사랑에 목숨을 걸고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한 남자를 절절이 

그리워한 시절이 있었다.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 때문이었다.

소세양은 형조, 호조, 병조, 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 좌찬성까지 역임한

대학자이자 송설체의 대가, 뛰어난 문장가였다.

그는 재색을 겸비한 황진이가 송도에서 이름을 날린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에게 

호언장담했다.

 

    내가 반드시 황진이를 만나 한 달간을 같이보내고, 미련 털끝 한 자락 없이

    멋지게 돌아올 터이니 두고 봐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소세양은 인편으로 황진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종이엔 석류나무 류(榴), 한 글자만 적혀 있었다.

석류나무유(碩儒那無遊)로 해석하면, "큰 선비가 여기 있는데 어찌 놀지 않겠는가?"

라는 뜻이다. 

황진이도 고기잡을 어(漁), 한 글자만 써서 답장을 보냈다.

고기자불어(高妓自不語)란, "높은 기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자의 훈과 훈을 합쳐 문장을 만든 절륜한 풍류남녀 들의 의사표현이었다.

흥이 일치한 두 사람은 즉시 만나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달 후, 소세양은 친구들과 약속한 대로 미련없이 이별을 준비했다.

전날 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누각에 올라 이별주를 마시며 시를 주고 받았다.

먼저 황진이가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하고 운을 뗀 뒤, 시를 읊었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소세양이 즉시 답시를 읊었다.

 

   달빛 아래 소나무만이 푸르고, 눈에 덮힌 한포기 꽃들은 고개를 떨구었구나.

   강물은 하늘과 맞닿아 슬픈 줄을 모르고, 쌓여가는 술은 그저 강물에 흘러갈 뿐...

   흐르는 강물은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내주지 않고, 저 멀리 절벽에서 살아남은

   한포기 꽃은 아름다운 낙화를 보여주는구나.

   내일 아침 그녀를 보내고 난다면, 슬픔은 비가되어 나의 몸을 짓누르리.  

 

결국 다음날 소세양은 황진이를 떠나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약조를 저버려 스스로 "사람이 아니다." 라고 천명한 소세양은

흔연히 황진이 곁에 더 머물렀다.

그후,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더 지속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이후에도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간찰(簡札)을 주고받았다.

이몽에서 인용한 황진이의 시는, 황진이가 소세양을 절절이 그리워하며 보낸 시이다.  

한데 가수 이선희의 노래 <알고싶어요>도 황진이의 시로 가사를 만들었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몽에 나오는 황진이의 시가 이선희의 노래 가사인 줄 알고      

"왜 이선희의 노래가 책에 나오냐."고 진지하게 묻곤 한다.

이런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니다.

이 시는 이선희의 노래 가사가 아니다!

황진이의 시를 <알고싶어요>의 작사가가 노랫말로 인용한 것이다.

이 시는 수많은 기행과 일화를 남기며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에

이름을 올렸던 진정한 예인(藝人) 황진이가, 당대 최고의 남자 소세양에게 보낸 연애편지이다.   

 

 

   *  이 글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