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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오남용

아라홍련 2012. 10. 25. 17:38

 

 

 

 

오늘 오후, 한 포털사이트에 오색 단풍에 휩싸인 창경궁 숲의 아름다운 전경이 사진으로 떴다.

덕분에 정취가 그윽한 단풍사진을 보며 잠시 안구를 정화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 가을빛 물 들어가는 궁궐의 아침 -

 

              25일 오전 서울 창경궁 숲이 오색창연한 가을 빛으로 물들고 있다.

 

창경궁은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이 창덕궁 옆에 붙여 지은 건축물이다.

장인인 한명회와 할머니인 정희왕후(세조 왕비)의 결탁으로 형인 월산대군을 제치고   

13살에 왕좌에 올랐던 성종!... 

당시 선왕인 세조, 덕종, 예종의 비(妃)가 모두 생존해 있던지라 대비들의 주거공간으로 

창경궁을 지었다.

정조 때에는 창경궁이 정궁 역할도 했다.

사도세자의 추모사당인 경모궁(景慕宮)이 지척에 있었기 때문에(현 서울대병원)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매일 사당을 참배하기 위해 창경궁에서 생활한 때문이다.  

 

한데, 이 기사에서 오색창연이 문제이다.

오색창연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많이들 쓰니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데, 없는 단어이다.

사전에도 없다.

한문이건 한글이건 마음대로 단어를 조합해서 공식적인 지면에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만약에 조합을 했다 해도 의미가 성립이 돼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오색창연이란 단어는 아예 조합될 수 없는 단어이다.

왜일까?

 

창연(蒼然)이란 단어는 세 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

 

  1.  오래되어 예스러운 빛이 그윽하다.

  2.  사물이나 빛이 몹시 푸르다.

  3.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하다.

    

오색(五色)은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다.

 

  1.  여러가지 빛깔

  2.  청색, 백색, 적색, 검정색, 황색 등 오행에서 따온 오방색(五方色)

 

눈치빠른 사람들은 이 단어가 조합될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기자는 아름다운 여러가지 빛깔의 단풍을 표현하기 위해 오색(五色)이란 단어에,

또 어디서 들은듯한 단어를 생각하며 창연(蒼然)이란 단어를 조합했다.

그 '어디서 들은듯한 단어'란 아마 고색창연이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창연이란 단어엔 아름다운 단풍을 표현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

'오래되어 예스러운 빛이 그윽할 때''빛이 몹시 푸르다.'는 뜻은, 붉고 노랗게 다채로운

색으로 물든 아름다운 단풍을 표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나 기자들이 단어 성립이 안되는 오색창연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 고색창연(古色蒼然)과 혼돈하기 때문이다.

고색창연하다는 뜻은 '꽤 오래되어 고풍스러운 풍치나 정취가 그윽하다.'는 의미이다.

운치가 있는 옛 건물들이나 그 주변의 고아(古雅)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신문이나 소설을 보면 이렇게 틀린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다.

이를 본 사람들이 틀린 단어들을 또다시 답습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엔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작가이건, 기자이건,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단어는 반드시 사전을 보거나 검색한 후

사용해야 단어의 무분별한 오남용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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