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메모하는 습관은 중독이자 필수이다.
내겐 몇 가지 무기가 그림자처럼 24시간 따라다닌다.
책과 메모장, 노트북, 컴퓨터, 네임펜 등이다.
나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지 않는다.
국내외를 막론한 많은 작가와 전문가들이 '작가가 되려면 최하 만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이를 토대로 영혼의 깊은 밑바닥에서 고아한 창작의 물길을 길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나, 만권도 부족하다.
독자들 중 연조가 꽤 돼는 활자중독자들 중엔 만 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평생 책을 취미로 살아왔다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겠는가.
책을 전문으로 읽는 블로그들을 한번 들여다 보라!
젊은 나이에 이미 활자중독자가 된 사람들이 꽤 여럿 있다.
스스로 활자중독자라고 지칭할 정도면 중독도 보통 중독이 아니다.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찾아낼 줄 아는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작가가 되려면
그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치열한 작가의식을 가져야 한다.
다양한 책을 읽고, 그걸 바탕으로 고통과 자기성찰, 자기철학, 치열하게 쓰는 훈련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된 창작의 꽃을 피워 낼 수 있다.
독자들로부터 내공을 인정받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만약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운좋게 얕은 내공으로 작가가 됐다면, 하루빨리 만 권 이상의
책을 읽도록 끊임없이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독자들의 감성만 건드리는 얕은 글은 타짜의 기술에 불과하다.
편협한 사상에 이끌려 속론(俗論)이나 떠드는 통속에 다름아니다.
책을 읽으면 반드시 메모가 필요하다.
중요한 부분은 메모하고 다시 반복해 읽어야 장기기억으로 뇌에 저장된다.
정보가 장기기억으로 저장됐을 때만, 필요할 때 즉시 불러오기를 통해 사용할 수가 있다.
내가 매일 순우리말과 한자 단어를 200개씩 반복해 쓰는 것은, 필요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넘겨 언제든 필요할 때 적시적소에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기 위함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훈련은 더욱 더 절실해진다.
메모는 책을 읽을 때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음악을 들을 때, 라디오를 들을 때, 다큐멘타리를 볼 때, 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운동을 할 때도 메모가 필요하다.
때론 아름다운 꽃을 보거나 하늘을 보며, 때론 저녁놀을 보거나 희붐해지는 미명의 거리에서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영혼의 내밀한 곳에서 본능적으로 감지되는 느낌이나
생각들을 즉시 메모해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그 순간 느꼈던 대부분의 감정은 흔적없이 소멸된다.
작가에게 메모가 필수인 까닭이다.
메모는 길게 쓸 필요가 없다.
태그를 붙이는 것처럼, 기억의 끈을 남기는 정도면 된다.
내 최근 메모장엔 이런 글들이 적혀있다.
코스타리카, 커피의 진주 피베리(칼리코라),팔미토:팔메라,
아메리카 커피:15분 볶음/유럽 커피:17분 볶음/에스프레소:20분 볶음.
(커피관련 다큐멘타리를 보며 쓴 메모)
철:신의 선물, 히타이트 제국, 앗실리아, 살라딘 왕, 리처드 1세, 알렉산더 왕
십자군 전쟁, 엘바섬:산화철의 보고, 다마스쿠스 검, 운철
(로마제국이 강대했던 이유가 제련기술 때문이었다는 다큐멘타리를 보며 쓴 메모)
영지주의, 여자교황 조안, 베스타 신녀, 성인부부, 정결례, 프랑스 성당의 비밀문서,
(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한 메모)
안형수 연주의 카바티나(Cavatina): 영화 디어헌터의 OST(작곡, 마이어스)
안형수 연주의 차르다시(Czardas): 헝가리 고유의 민속 춤곡(작곡, 몬티)
(음악을 들으며 쓴 메모)
이 메모들은 훗날 창작의 중요한 단서이자 자료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했거나 인상깊은 대목을 메모했기 때문이다.
메모는 원하는 분야에서 꿈을 이루고 창작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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