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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

아라홍련 2012. 10. 24. 05:37

일에 시달려 월백풍청(月白風淸)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사이,

가을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흐르는 세월을 유수광음(流水光陰)이라 했던가?...

 

겨을맞이 대행사로 커텐을 바꿔 달았다.

때론 흐르는 세월을 감지하지 못해 아파트 관리비가 6개월이나 밀려 게시판에

관리비 미납자로 공고가 난 적도 있었다.

분명 한 달쯤 지난 것 같은데, 어느새 반년이 지나있었다.

일에 미쳐 극번한 생활을 하다보면, 일상적인 생활에서 격리되는 왠만한 아픔은 감수해야만 한다.

오늘 거실 베란다와 침실쪽 베란다에 설치돼 있던 가볍고 시원한 커텐들을 거두고,

겨울용 이중 커텐으로 바꿔 달았다. 무려 너덧 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비록 집은 도서관처럼 되어 있지만, 난 블라인드 대신 커텐을 고집한다.

사무실처럼 딱딱한 분위기를 내는 블라인드는 너무 규격적이고 차갑게 느껴져 싫다.

그래서 커텐을 선호한다.

한때는 커텐을 계절별로 사서 모으는 게 취미였던 낭만적인 때도 있었다.

 

우리집 베란다에 크리스탈 술이 장식된 대형 카키색 벨벳 커텐이 드리워지면,

곧 겨울이 머지않다는 의미이다.    

속 커텐으로는 붉은 장미가 수놓인 흰색 레이스 커텐을 달았다.

난 레이스 커텐을 유독 좋아한다.

특히 레이스가 짜여진 문양에 민감하다.

어려서부터 눈에 익은 노스탤지어와 우아함이 돋보이는 복고풍 레이스 문양을 보면

뭔가 아련한 옛 추억들이 아삼아삼 환영처럼 어른거린다. 

전기 페치카에 불을 켜 온기와 운치를 돋운 뒤, 시크릿 가든의 음반을 틀었다.

침향 한자루도 피워올렸다.

양털 카페트에서 백련차를 마시며, 오랫만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었다.

니체의 근원적인 고독이 나의 고독을 잠시 뒤로 물리쳐 줘 잉여의 시간을 소중히 만끽한 가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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