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책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영혼의 기록일 수도 있고,
울부짖음 일수도 있으며, 사명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취미나 과시용일 수도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이기도 할 것이다.
첫 장편소설인 '이몽'은 내 영혼의 기록서이다.
6년 간 내 모든 것과 영혼을 다 바쳐 쓴 책이다.
역사와 백성이 함께 버려 한국사에서 사라진 왕을 재조명하고, 왕을 비주류에서
주류로 탈출시키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철종에 대한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인지라 모든 것을 혼자 공부해야만 했다.
왕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철종을 전후로 정조 때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을 관통해 모두 꿰뚫고 있어야만 했다.
6년 동안 박물관대학을 거의 40여 회나 다녔고, 5개월짜리 한국사 강의와 역사와 전쟁,
조선시대의 무예법, 궁궐건축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강의를 수도없이 들었다.
나머지 시간엔 공부와 작업을 병행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이몽'이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감당하기 어려운 세월이었다.
이몽을 집필하는 동안 난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었다.
다시는 되풀이 하고싶지 않은 극한의 세계를 경험했다.
내가 당시를 술회할 때, "그건...인간의 삶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바로
그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선물할 때 '이몽은 제 영혼으로 쓴 책입니다.'라고 적는다.
책은 내게 모든 것이며, 세상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지난 9월 말, 홍대 거리에서 와우 북페스티벌이 열렸다.
행사가 끝나는 날 오후, 나는 청형(靑熒)한 햇살을 받으며 은행나무 출판사 부스를
찾았다.
'이몽'을 찾는 순간, 난 몹시 당황했다.
'이몽'이 행사도서 쪽에 진열돼 있었다.
출간된 지 이미 4개월이 지났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들도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할인행사를 하고 있어, 이몽이 행사도서 쪽에 있는 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데도 내겐 충격이었다.
평소에도 대형 인터넷서점에 중고책으로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이다.
신간이 중고서점에 나돈다는 것은 독자들이 책의 가치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고,
소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몽은 신간이 아닌데도 나는 아직도 신경이 쓰인다.
작가는 자신이 쓴 책을 독자들이 사랑하고 가치를 인정해 주어 소장해 주기를 늘
갈망한다.
이몽은 30질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아직도 9질 18권이 남아 있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책을 보는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
난 그 책들을 놔두고 도저히 뒤돌아설 수가 없었다.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결국 난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기 위해 18권을 다 구입해 한손으로 들고왔다.
난 한쪽 팔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
영양실조로 쓰러질 때 잘못 넘어져 어깨를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18권은 실로 어마어마한 무게였다.
출판사에서 택배로 보내준다고 만류하는데도, 난 악착같이 한손으로 책을 든 채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버스를 타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책이 무겁다고 하여, 단 한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초인적인 힘이었다.
다음날 나는 하루종일 몸살을 앓았다.
손가락에 생긴 깊은 비닐끈 자국은 그 뒤 이틀이나 더 흔적이 남았다.
작가에게 책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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