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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몽(異夢)에서 가장 슬픈 대목

아라홍련 2012. 10. 18. 00:14

 

 

 

 

              사람은 제각각 감정의 비등점이 다르다. 

              영혼이 경련을 일으키듯 파르르 떠는 현(絃)은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흔들리는 부분이 다르다.

              사람들은 역사소설 이몽을 읽고 어느 대목에서 가장 슬펐을까?...

              책을 읽은 독자나 서평 전문 블로거들도 슬펐던 대목이 각각 다르다.

              작가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필력과, 이몽의 주제를 정확하게 찾아 낸 작품분석력을

              자랑하는 한 문학 전문 스타블로거는 슬펐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몽에서 가장 슬픈 순간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풍양조씨가 독성이 강한

                    최음제로 철종을 병들게 했고, 이런 징후와 증세를 알면서도 후손이 업보를

                    이어받지 않게 하려는 일념으로, 자식의 머리가 석류처럼 갈라져 요절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그 엄청난 고통을 가슴으로 감내하려는 철종의 결의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희생으로 안동김씨의 마지막 명맥을 끊어버리려는 꿈을 꾼다.

 

 

              그는 슬픈 감정을 느끼는 순간도 남다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혜각사 뒷산으로 도망치다 자객들로부터 독화살을 등 뒤에 맞은

              봉이를 업고, 지명선사가 하염없이 탑돌이를 하던 장면을 가장 슬픈 장면으로 꼽는다.

              봉이는 선사의 등 뒤에 업혀 "인생은 연꽃잎 위에 내리는 빗방울과 같다."는 선사의

              읊조림을 들으며 홀연히 니르바나로 향한다.

              나는 이 장면을 쓰면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대학 도서관에서 자판기를 두드리며

              몇 번이나 흐느껴 울었다.

              수정작업을 할 때마다 정확히 이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이몽>을 쓴 내게 이몽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을 묻는다면, 나는 다음 대목을

              꼽을 것이다.

 

 

                     수줍어 멈칫거리던 방상궁이 마침내 꽃잎을 활짝 벌려 왕을 맞았다.

                     가파르게 떨리는 여인의 몸속은 변화무쌍했다. 먼 듯하다 가까웠고,

                     가깝다가 이내 멀어졌다.

                     찬듯하다 쇳물처럼 뜨거웠고, 뜨거운 듯하다가 이내 얼음처럼 차가웠다.

                     방상궁은 조이고, 당기고, 뿌리고, 휘두르며 능란하게 옥근을 가지고 놀았다.

                     왕의 심장이 형형색색으로 찬란한 파열음을 냈다.

                     한동안 희열을 맛보던 왕의 얼굴이 순간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관능과 쾌락, 자책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고통도

                     수반됐다.

                     고통을 뿌리치듯 전율하던 왕이 방상궁 품속으로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머리를 들고 좌우로 허리를 비틀던 방상궁이 마침내 감탕법대로 교성을 터트렸다.

                    왕이 희열에 떨며 아낌없이 몸을 비웠다.

                    왕은 파정(破精)하며 끝내 소리 내지 않았다.

                    방상궁 얼굴 위로 옥루 몇 방울만 투두둑 떨어졌다.

 

 

             작가도 슬픔을 느끼는 비등점이 남다르다.

             봉이가 떠난 후, 다른 여인과 첫 정사를 격렬하게 벌이면서도 불현듯 봉이에게 죄책감

             느껴 파정하며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투두둑 눈물을 떨어트리는 왕!... 

             누구인들 이 상황이 슬프지 않겠는가? 

             옥루를 흘리는 왕도... 눈물을 받는 방상궁도... 하늘에서 바라보는 봉이도... 밖에 서있는 봉이의

             친구인 호위무사 동영이도... 그리고 이 장면을 만든 작가도 슬프다.

             모두 슬프다.

             지금 생각해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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