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과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은 주합루(宙合樓) 뒤편 동북쪽 울울창창한 숲속에 자리해 있다.
주합루의 부속 건물인 서향각(書香閣)의 별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서측으로는 1칸을 더 달아 누(樓)를 만들었다.
방형 평면에 여염집 사랑채처럼 누마루가 돌출돼 있는 'ㄱ'자형 집이다.
전면 2칸과 동측에 퇴마루를 달았다.
4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온돌방과 마루방을 겸비하였다.
누마루쪽으로는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란 편액(扁額)이 걸려 있는데, 당호와
같이 시원한 선경(仙景)에 비유될 만한 곳에 위치해 있다.
부용정과 부용지 등 주합루의 주변 경관들이 모두 바라다보이는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관(觀)'은 누각이라는 뜻이다.
흔히 누관(樓觀)이라 하여 전망이 특히 좋은 곳에 위치한 누각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제월광풍(霽月光風)은 '비 갠 뒤의 밝은 달빛과 맑은 바람'이라는 뜻이다.
흔히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인품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된다.
북송(北宋)의 유명한 문인이자 서예가인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 성리학자인
염계 주돈이(周敦頤, 1017-1073)를 존경해 일컬은 데서 유명해진 말이다.
황정견은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 속이 매우
시원하고 깨끗하여, 마치 광풍제월과 같다."고 기록했다.
'제월광풍'이라는 말은 훌륭한 인품을 나타낼 때 쓰기도 하지만, 세상이 잘 다스려진
상태를 말할 때도 사용한다.
제월광풍관은 민도리 집으로 단청(丹靑)을 하지 않아 고색짙은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건축물이다.
단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왕실에서 사적 공간으로 사용하거나, 또는 공부를 위한 건물일 때는 단청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창덕궁 후원에서도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제월광풍관이 실은 '공부하던 장소'
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방안에 있는 벽장을 봐도 증명이 된다.
큰 벽장이 아닌, 여러 단으로 된 선반 구조에 장지문을 층층이 달아놓은 모양이다.
그것도 이중 벽장으로 되어 있어서 집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큰 수납 공간이다.
제월광풍관의 벽장은 바로 서가(書架)이자 책장이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익종)도 이곳 제월광풍관에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전해진다.
서향각(書香閣)에는 주로 임금이 읽는 중요 책자가 보관되어 있었다.
임금 이외의 사람들도 그런 책들을 빌려 읽을 수는 있었지만, 반출만큼은 허용되지 않았다.
주합루 서쪽에 있는 서향각이 공동 열람실 구실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모범 관리들에게 독서 휴가를 주었다.
주로 품계가 높은 관리에게 안식년 비슷하게 6개월이나 1년간 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했다. 일종의 위로 휴가인 셈이다.
휴가를 받은 관리들은 집이나 향리에 내려가서 소일하기도 했지만, 책을 좋아하는 일부
관리들은 서향각에 있는 책을 빌려서 '희우정'이나 '제월광풍관'에 쌓아놓고 읽었다.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은 독서 휴가를 받은 당상관들의 전용 독서실이었던 셈이다.
일부 창덕궁 해설서에 "지금은 천석정이 없다.", "천석정 자리에 다시 광풍제월관을
지었다."고 하면서 천석정과 광풍제월관이 마치 별개의 건물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엔 "천석정이 주합루 동북쪽에 있으며, 작은 누각이 있는데
'제월광풍루'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정확히 기록돼 있다.
이를 볼 때 '천석정'과 '제월광풍관'은 각각 다른 건축물이 아닌, 한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소설 이몽(異夢)에는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 어떤 부분에서 나올까?...
내시부 수장인 상선(尙膳)과 도승지가 금호문 앞에 나타난 건 술시(戌時)가
다 됐을 무렵이었다.
채찍을 든 채 궐문을 지키던 엄장한 내병조 군사들이 기겁을 해 예를 갖추었다.
석강(夕講)을 끝낸 왕은 편전인 희정당에서 밀린 상소문과 탄원서를 읽고 있었다.
수직내시가 두 사람의 입시를 알리자 "어서 들게 하라!"는 어명이 내렸다.
두 사람이 내전에 들어서자 초췌한 몰골에 놀란 왕이 토끼눈을 떴다.
"무슨 일입니까? 두 분 일찍 퇴궐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두 사람이 우물쭈물하자 왕이 끌끌, 혀를 찼다.
"얼굴이 많이들 상했어요. 그만 퇴궐해 조섭하세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도승지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아뢰었다.
"전하! 소신들... 전하께 술 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
왕이 불안한 눈빛을 보이자 상선이 말결을 달았다.
"소신이 제월광풍관에다 소박한 술상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간만에 한잔 하십시다."
세 사람은 즉시 후원으로 향했다.
상선과 도승지가 사관과 주서, 대전 상궁들을 한사코 떼어놓는 바람에 사알과
무예별감 몇 명만 거느린 단촐한 행차였다.
제월광풍관은 창덕궁 후원에서도 제일로 손꼽히는 명소였다.
온돌방 2개와 마루방을 겸비한 아담한 전각이 주합루 뒤편에 수줍은 듯 숨어있었다.
봄이면 녹음방초에 매화꽃이 만발해 건물 당호처럼 선경에 비유될 만큼 절경이었다.
섬돌 앞엔 내시부 정3품 상온(尙醞)과 상다(尙茶)가 침통한 표정으로 대기 중이었다.
왕이 '상온'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흠칫 놀라 물었다.
"무, 무슨 일이오?"
당황한 상온이 고객를 숙인 채 아뢰었다.
"선전관들과 무예를 겨루다 조금 다쳤습니다."
경궁지조인 왕이 불안한 눈빛을 거두지 못하자 상선이 나섰다.
"심려치 마소서. 상온은 워낙 무예가 출중해 줄곧 선대왕들의
호위를 맡았었나이다. 지금도 무예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엔 도승지가 말을 거들었다.
"어서 납시옵소서! 소신들이 요즘 전하께 불충한 점이 많아
벌주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방 안엔 왕이 좋아하는 생새우전과 버섯전, 된장과 들깨로 부친 산나물, 더덕구이,
청태무침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상온이 냉천에 담가두었던 술을 가지고 들어왔다.
왕이 좋아하는 막걸리였다.
사알들이 도성의 주막집을 샅샅이 뒤져서 강화도 막걸리와 가장 비슷한 막걸리를
이문동 주막집에서 찾아냈다.
'상다'가 들기름에 시래기 볶은 것을 가지고 들어오자 용안에 희색이 만연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도승지가 무릎을 꿇고 백자 사발에 막걸리를 가득 따랐다.
두 사람은 눈물을 참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왕이 술잔을 비우자 상선과 도승지가 고개를 돌려 술잔을 비웠다.
<이몽 2부, 63p~64p>
왕의 정인인 '봉이'가 강화도 혜각사에서 자객들에 의해 살해된 날!
봉이를 구하기 위해 비밀리에 무예가 뛰어난 호위내시들을 급파했던 상선!...
마포나루에서 호위내시들을 이끌고 '봉이'를 구하기 위해 혜각사로 달려갔던 상온!...
궁궐 밖 내시부(內侍府)에서 안절부절하며 상선과 함께 소식을 기다리던 도승지!...
자객들과 싸우다 봉이가 화살에 맞아 죽는 것을 막지 못한 채, 급히 내시부로 철수한
'상온'으로부터 끔찍한 소식을 들은 상선과 도승지!...
두 사람은 절망감에 할 말을 잃은 채 한동안 주저앉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왕을 위로하기 위해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에 술상을 준비한 뒤 편전인 희정당을
찾았다.
그리고 세 사람은 무예별감 몇 명만 대동한 채 창덕궁 후원 주합루 뒤쪽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제월광풍관으로 향했다.
상선과 상온, 상다,그리고 도승지는 보령 열아홉까지 강화도에서 보낸 왕을 위해서
궁궐 음식이 아닌, 평소 왕이 좋아하는 술과 음식을 준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왕은 총애하는 신하들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어젯밤 봉이 꿈을 꾸었는데, 봉이가 하염없이 울었어요.
왜 우는지 여러 번 물었는데도, 끝내 대답하지 않았어요.
너무 안타까워 밤새 봉이를 부둥커안고 울다 겨우 잠에서
깨어났어요.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 종일 마음 아프고 심란했어요.
동무들을 불러 봉이 소식을 한번 알아봐야겠어요.
참으로 슬픈 장면이다.
역사소설 이몽에는 바로 이 부분에 제월광풍관(霽月光風觀)이 나온다.
한데...
교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책엔 '재월광풍관'으로 나온다.
다음번 새로 책을 찍을 때는 오타를 제대로 고쳐서 출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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