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Adam Gibbs의 작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白石, 1912~1996) *~
<함흥 영생고보 재직시 강의하는 모습. 1937년 영생고보 졸업앨범>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 시는 당시 신문기자이자 교사였던 백석(白石)이 연인 관계에 있던 경성의
권번(券番) 기생인 '진향(眞香)'이라는 기녀에게 바쳤던 詩다.
권번은 일제 강점기 기생들의 조합을 말한다.
이 기녀의 이름은 당시 가무가 뛰어났던 서울의 대표적인 기녀 김영한(1916~1999)
이다.
그녀의 아호인 '자야'는 바로 백석이 지어준 것이다.
어느날 백석은 '진향'이 사온 <당시선집(唐詩選集)>을 보다가 이백(李白)의 詩인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보게 됐다.
여기에 착안한 백석은 연인인 그녀의 아호(雅號)를 '자야(子夜)'로 지어주었다.
한국 문학사에서 유명한 '자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는 장안(長安)에서 서역(西域)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러 출정한 낭군을 기다리는 여인 '자야'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내용이다.
불꽃 같이 격렬한 사랑을 나누던 백석과 자야, 두사람은 매우 사랑해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백석의 집안에서는 기녀와의 혼인을 강력히 반대했다.
평북 정주에 있던 그의 집에서는 백석을 여러번 불러들여 매번 다른 여자와 결혼시켰다.
백석이 결혼식 초야만 치룬 뒤, 곧바로 경성으로 도망쳐 '자야'의 품으로 돌아갔기 때문
이다.
백석이 당시 세 번이나 결혼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게 남자의 마음!...
백석은 이 아름답고 몽환적인 詩를 당시 기자였던 소설가 최정희(1912~1990)에게
구애를 하면서 연서(戀書)로 주기도 했다.
시를 여인을 유혹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때문에 이 詩에 나오는 <나타샤>는 '자야' 일수도 있고, 또 백석이 사랑했던 모든
여인들을 아우르는 통칭일 수도 있다.
그가 정말 사랑했던 여인은 누구였을까?...
백석이 '구원의 여인'으로 생각했던 란(蘭)과... 자야... 최정희... 그리고 염문을
뿌렸던 수많은 여인들!...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변하는 것이고, 움직이는 것이며, 동시에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백석은 사랑을 이루고자 '자야'에게 함께 만주로 도망가 살자고 청한다.
하지만 '자야'는 백석의 앞날을 방해할까 저어하여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두사람은 남북으로 나뉘어 각각 남게 된다.
이것이 두사람의 영원한 이별이 됐다.
'자야'는 남한에 남았고, 고향이 평북인 백석은 북한에 남았다.
해방정국에서 고당 '조만식'의 러시아 통역을 맡았던 백석은, 동란 이후에는 북한의
한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하며 지냈다.
물론 결혼도 다시 했다.
홀로 남게 된 '자야'는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사들여 성북동에 <대원각(大園閣)>
이라는 호화 요정을 만들었다.
대원각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3대 요정에
들어간다.
기생 수백 명씩을 두고 운영했던 우리나라 요정 정치의 산실이기도 하다.
훗날 대통령이 된 유명 정치인들과 굴지의 기업가들이 요정 출신의 기생을 첩으로 둔 때가
바로 이 때이다.
기업가들의 대부분은 첩과 혈육인 자녀들을 거두며 나름의 책임감을 보여줬지만,
후에 대통령이 된 정치인들은 첩과 자식을 거두지 않고 최소한의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야멸차게 방치했다.
때문에 첩과 자녀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고, 집권 기간 중에 정치적 스캔들로 비화된
적까지 있다.
이들의 인격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이다.
요정을 운영하며 '자야'는 무려 천억 원대의 재산을 모은 거부(巨富)가 됐다.
그녀는 뒤늦게 중앙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백석이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사랑하던 연인이 전공한 학문을 공부하는 게 그리움과 순정한 사랑의 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자야'는 사업가였지만, 또한 저서를 여러 권 출간한 문학인이기도 했다.
그녀의 필명이 바로 '자야'이다.
'자야'는 매년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종일 곡기를 끊고 백석을 그리워하면서
경건하게 지냈다.
비록 기생 출신이었지만, 그녀의 백석에 대한 사랑은 더할 수 없이 지고지순(至高之純)
했다.
순정한 마음으로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비록 잠시 함께 했던 시간이었지만, 사랑의 순도가 워낙 높아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자야'는 백석의 詩를 좋아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노년의 '자야'는 "백석의 詩를 조용히 읽는 게, 생의 가장 큰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라고 말하곤 했다.
언젠가 그녀는 이렇게 술회한 적이 있다.
백석의 詩는 내게 있어 쓸쓸한 적막(寂寞)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원천수였다...
어느날, 법정스님의 <무소유(無所有)>를 읽은 '자야' 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
'자야'는 법정스님을 찾아가 대원각을 시주할테니 사찰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대원각>의 시세는 일천 억원에 달했다.
지금으로 치면 무려 1조원의 가치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한데, 법정스님은 한사코 사양했다.
무려 10여 년 동안 거절했다.
그러다가 '자야' 가 폐암에 걸린 것을 알게되자 법정스님은 그때 비로소 그녀 청을
받아들였다.
'자야'는 천억 원에 이르는 대원각 터를 모두 기증하고, <길상사>를 건축하는 비용까지
모두 부담했다.
법정 스님은 이 사찰을 1995년 조계종에 등록한 뒤, 1997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지었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아담하고 고즈넉한 사찰 <길상사(吉祥寺)>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12월 14일, 창건 법회를 열었다.
이 날...
'자야'는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은 뒤 이런
소회를 밝혔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 곳에서 맑고 장엄한 법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때론 '상실'이 이렇게 큰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랑을 잃고 평생 외롭게 지냈지만, 티끌 같은 진세(塵世)의 허무함을 절감했던
그녀는 법정스님과 인연이 되어 '모든 중생들의 휴식처'가 될 것을 기원하며 <길상사
(吉祥寺)> 라는 아름다운 사찰을 세상에 남겼다.
말년에 그녀는 폐암을 앓았다.
죽음에 임박하자 <창작과 비평사>에 현금 2억원을 쾌척해, 꿈에도 그리던 연인의
이름을 딴 <백석 문학상>을 만들었다.
길상화 '김영한' 보살은 1999년 11월 14일, 목욕재계하고 길상사에 와서 참배했다.
그리고 길상사 내에 있는 '길상헌'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김영한' 보살과 <길상사>에 대한 유명한 일화 하나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천억 원대의 <대원각> 기부를 받아줄 것을 간청하는 자야 '김영한' 보살에게
법정스님은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김영한' 보살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일천 억원의 돈이 그 사람(백석)의 詩 한 줄만 못합니다...
진세의 고통과 슬픔을 초월하고, 중생의 아픔을 포용하기에 이르렀던 '자야'의 영혼의
수준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석도... 자야도... 법정스님도 이제 모두 떠났다.
탐욕과 음모, 불의와 부패,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이 미친
세상에서 문득 '자야'의 순정한 사랑과, 평생을 무소유로 사셨던 최고의 종교지도자
법정스님의 청렴함과 훌륭한 덕행을 얘기하다 보니, 마치 지구별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의 일을 잠시 환영으로 본 듯하기만 하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상인 '자야'!
천억 원을 10년 동안이나 거절할 수 있었던 무욕과 청렴의 표상 법정스님!
두사람은 비록 사바세계를 떠났지만... 그분들이 인간세에 남긴 사랑과 헌신, 무욕과
무소유, 절제와 순정함은 영원히 빛을 발하며 여러 사람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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