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봉 詩, 몽혼(夢魂)
夢魂
(꿈속의 넋)
近來安否問如何 근래 어떻게 지내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 달빛이 창가에 비치면 시름 더욱 깊어져요.
若使夢魂行有跡 꿈길에 발자욱 남겼다면
門前石路半成沙 그대 집 앞 돌길은 거진 모래 되었을 것을...
~* 이옥봉(李玉峰) *~
* 사랑 한번 징하다.
안타깝다 못해 아주 징하다.
남편 '조원'에게 쫓겨난 뒤, 뚝섬에 오두막 방 하나 얻어놓고 매일 남편을 기다리는
'옥봉'...
밤잠을 못 이루며 남편이 그리워 하염없이 편지를 쓰고, 詩를 쓰는 여인...
달빛이 창호지에 비치면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실연의 고통은 절절한 신음소리를
낸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늘 남편의 집을 찾아가 서성인다.
꿈길에 얼마나 발자욱을 많이 남겼던지, 만약 꿈이 아니라면 '조원'의 집 앞 돌길은
너무 닳고 닳아 거진 모래가 되었을 것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애달프게 노래하고 있다.
참 대단한 사랑이다.
옥봉(玉峰)도 대단하고...
조원(趙瑗) 또한 대단하다.
그녀가 그토록 싫었던 것일까?
아님, 옥봉의 집착이 무서웠던 것일까...
원수지간도 아닐진대, 본처를 버리라는 것도 아닐진대, 그저 천한 소실(小室) 자리로
돌아가고 싶을 뿐인데 저리 몰인정하게 대하다니, 인연이 아니라고 하는 것 외에는
어떻게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옥봉'의 詩를 읽을 때마다 '조원'의 몰인정과 매정함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곤 한다.
그러나...
세상 이치는 알 수 없는 것!
옥봉은 사랑을 잃은 대신, 주옥과 같은 詩를 남겼다.
중국에서도 '이옥봉'을 '허난설헌'과 함께 쳐준다.
시풍(詩風)과 시격(詩格)을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한다.
만일...
산지기 송사 사건이 없고, 옥봉이 평생 '조원'의 소실로만 살았다면 우리는
'옥봉'의 시경(詩境)이 높고 그윽한 아름다운 詩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고통스런 사랑의 상실과 처절했던 삶은 결국 온전히 詩로 승화됐다.
때문에 세상 이치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과 이 별에 대한 비밀은 오직 신(神)만 알고 있다.
겸손히, 또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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