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봉 詩, 규정(閨情) 1
閨情
(규방의 정)
有約來何晩 약속해 놓으시고 오시는 것이 어찌 이리 늦나요
庭梅欲謝時 뜰의 매화도 지려고 하는 때에
忽聞枝上鵲 갑자기 가지 위에서 까치 소리 들리니
虛畵鏡中眉 헛되이 거울 속 눈썹을 그립니다
~* 이옥봉(李玉峰) *~
* 이옥봉
양녕대군의 고손자인 옥천군수 이봉지(李逢之)의 서녀이자 조원(趙瑗)의 소실이었다.
조선 제 14대 왕인 선조(宣祖) 시기의 여류시인이자,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후손이기도 하다.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중기를 빛낸 여류시인이다.
천재시인, 순정한 시인으로 꼽힌다.
옥봉(玉峰)은 그녀의 號이다.
옥봉이 남긴 詩는 모두 32편이다.
1704년(숙종 30), '조원'의 현손인 정만(正萬)의 손에 의해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에 <옥봉집(玉峰集)>이란 이름으로 수록돼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옥봉은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함께 유난히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문인이다.
두사람 모두 화려한 기생 시인들처럼 삶이 자유분방하거나 당당하지도 않았고,
또 사랑과 쾌락을 자유롭게 추구하지도 못했다.
두사람 다 삶이 녹녹하지 않고, 처절하거나 또는 신산했다.
특히 '이옥봉'은 재능이 뛰어났음에도 서녀 출신이라 어쩔 수 없이 소실이 되었고,
또 재능을 좋은데 발휘하다 이로 인해 남편에게 버림받고 고통스런 비련의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생몰년도조차 분명치 않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詩는 거의 대부분 애절한 이별을 주제로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에서도 <규정(閨情)> 연작시나, 남편에게 보낸 <증운강(贈雲江)> 등은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재치와 기교가 섬광처럼 반짝인다.
운강(雲江)은 남편이었던 '조원'의 號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詩만 봐도 괜히 안스럽고 연민이 느껴진다.
허난설헌의 동생인 허균(許筠)은 자신의 시평집(詩評集)인 <성수시화(惺叟詩話)>와
<학산초담(鶴山樵談)>에서 이옥봉(李玉峰)을 이렇게 평했다.
나의 누님 '난설헌'과 같은 시기에 '이옥봉'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바로 조백옥(趙伯玉, 조원)의 첩이다.
그녀의 詩 역시 청장(淸壯)하여 지분(脂粉)의 태(態)가 없다.
참 평(評) 한번 멋지다!...
역시 '허균'이다.
'허균'은 두 책에서 그녀의 詩가 매우 밝고 강건해 자못 부인의 화장기 나는 말이 아닌
아닌 것을 높이 평가하며, 시경(詩境)이 여성답지 않고 높음을 극구 칭찬했다.
예로부터 여류작가의 작품이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흐르거나 기교에 치우치면, 여인의
지분(脂粉) 냄새가 난다고 하여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또 신흠(申欽)은...
근래 규수의 작품 중, 승지 '조원'의 첩 이씨가 제일이다.
라고 높이 평가했다.
뿐만 아니다.
홍만종(洪萬宗)은 <시평보유(詩評補遺)>에서 옥봉의 詩 <춘일즉사시(春日卽事詩)>가
만당의 조격(調格)이 있다고 칭찬했고,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는...
사람들이 '조원'의 첩 옥봉 이씨를 조선 제일의 여류시인이라고
일컫는다.
... 이렇게 극찬했다.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삶은 애잔하고 한없이 쓸쓸했지만,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神은 절대로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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