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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어떻게 믿어야 하나, 불교의 보살사상(菩薩思想)과 조로아스터敎

아라홍련 2014. 3. 26. 03:31

   

 

 

        <아프카니스탄 칸다하르 지역에 있는 아쇼카 비문(碑文)이다.

          놀랍게도 위쪽 은 그리스어로, 아래쪽은 아람어(Aramaic language)로 적혀있다.

          아람어는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였고, 히브리어 대신 유대인의 언어가 됐다.

          구약성서의 '다니엘'과 '에즈라'도 아람어로 쓰여졌다.

          또 바빌로리아 '탈무드'와 예루살렘 '탈무드'도 아람어로 쓰여졌다.

          한데, 인도의 마가다국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이자 인도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워서 불교를 보호하고 포교한 이상적인 왕으로 많은 설화와 유적을 남긴

          아쇼카 왕의 업적을 적은 비문에 아람어와 그리스어가 쓰여져 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보면, 다른 종교에 대한 편견이 쉽게 사라질

          것이다. 또 이 비문에는 조로아스터敎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이 대거 실려있다.> 

 

 

            불교(佛敎)의 보살사상(菩薩思想)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敎와 힌두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사실 이는 매우 놀랄 일이다.

            조로아스터敎는 유일신(唯一神) 하느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의 사상에 두루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창조신화도 거의 흡사하다.   

            한데, 불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전혀 다른 종교이다.

            한데도, 불교의 보살사상이 조로아스터敎와 힌두교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불교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특히 미륵불(彌勒佛)이 그렇다.   

            이는 위의 사진에서도 보듯 많은 기록과 자료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초기 불교에는 인도에서도 그리스어, 아람어를 다 사용할 정도로 지금처럼 종교끼리

            국가적, 종교적으로 배타적이 아니었다.

            지금의 세계관과는 전혀 다르다. ​

            또 불교가 탄생하기 전, 주변국의 영향으로 인도엔 조로아스터敎의 '샤오쉬얀트'

            사상이 유행했다.

            이는 神에 의해 지구에서 인간의 세계가 시작된 후, 가장 먼저 시작된 종교의 형태가

            바로 조로아스터敎이기 때문이다. ​

            미륵불(彌勒佛)은 지금은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하고 있는 승려이나, 석가가 입멸

            (入滅)한 후에 내세에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이다.

            도솔천(兜率天)에 살고 있으며, 56억 7천만 년 후에 지구로 와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가운데 한 명이다.​

            도솔천은 불교의 욕계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을 말한다.

            불교의 우주관에서 거대한 중심에 있다는 산인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의 거리에 있다고 알려진 산이다.

            56억 7천만 년은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하지만 하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단순비교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불교(佛敎)가 나타나기 전, 인도 인접지역엔 어떤 종교가 성행했을까?...

​            바로 조로아스터敎의 '샤오쉬얀트(saosyant)' 사상이다.

            또 기원전 6세기 중반에서 4세기 초, 인도에서 불교가 교학적 발전을 거듭하던 당시,

            인도 서쪽에는 페르시아의 전신인 아케메니아 제국이 있었다.

            한데, 이 제국에서 신봉된 종교가 바로 조로아스터敎의 전신인 자라투스트라敎이다. 

            이 종교는 고대 이란 종교인데, 힌두교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

​            때문에 초기 불교계는 조로아스터敎의 교리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교 초기 경전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가 수록돼 있는 타니파타(Suttanipata)

            에 <태양의 후예>라는 표현이 있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위의 사진에 있는 아쇼카 비문(碑文)​을 보면, 조로아스터 교인들에게 악신(惡神)을 

​            뜻하게 되는 '데바(deva)' 라는 단어는 배제한 대신, 조로아스터敎에 "좋다."는 수식어를

            자주 사용하는 등 표현상 배려가 엿보인다.

            이는 조로아스터敎가 불교의 형성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보살사상에 이런

            부분이 반영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종교적 고찰을 통해,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고 자신의 종교를

            강압적으로 전도(傳道) 하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잘못된 행위는 자칫 타인의 영적인 부분에 생각지도 못한 큰 상처를 입히고 박해로

            작용될 수 있다. 

            <종교 전쟁>도 하늘의 뜻을 무시한 인간의 탐욕의 결과로 일어났을 뿐이다.  

            神의 뜻과는 무관했다!...

            2011년 10월 27일, 베네디토 16세는 이탈리아 아시시 聖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열렸던

           <세계 종교간 모임>에서, 기독교가 장구한 역사에 걸쳐 때때로 폭력을 사용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기독교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자행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를 큰 수치심으로 생각하는 것과 함께, 시인한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남용이며, 기독교의 본질에 명백하게 반하는

                           것이다.

                           폭력과 전쟁, 테러가 반복돼서는 안된다.

 

            이는  교황이 <십자군 전쟁>과,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南美 등 신대륙에 엄청난  

            폭력을 행사한데 대해, 교황청의 수장으로 지난 과오를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또 교황청은 2000년에도 요한 바오로 2세가 '역사적 과오'에 대해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 바 있다.

            이는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강제로 개종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자칫 하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중죄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대목이다.

 

            종교(宗敎)는 똑바로, 올바르게 믿어야 한다.

            서로 다른 종교라 할지라도 그 안에 숨겨진 사상은 거의 동일하다.

            한 뿌리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내 종교는 옳고, 다른 종교는 틀리다는 생각 자체가 죄악이 될 수 있다.

            내 종교도 소중하고, 다른 종교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또 나와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배타적인 종교관은 그사람의 영혼의 수준을 말해준다.

 

            어떤 종교이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믿고,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 종교를 가장 올바르게 대하는 인간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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