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 부자댁 가훈(家訓)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명문가(名門家)를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서슴없이
경주 최 부자댁을 언급한다.
정승을 많이 냈다거나, 단순히 거부(巨富)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집안 대대로 삶에 대한 철학이 심오하고, 선(善)을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행해왔으며, 이 전통을
후손들이 꿋꿋이 실천해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가훈(家訓)에 내포된 깊은 철학이 있지 않는 한, 결코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순히 돈이 많았거나, 학자가 많이 배출됐었거나, 고위관리가 많이 나왔다고 해서 명문가로
쳐주지 않는다.
경주 최 부자댁처럼 오랜 세월 동안 존경과 신망을 변함없이 받으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이자 noblesse oblige의 모델로 자리매김한 집안은 흔치 않다.
이는 단기간에 또는 어느 시대에만 적선을 행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권력(權力)과 상당한 거리를 두었다.
또 명리(名利) 앞에서 초연했다.
지금 이 시대의 명문가로 거론되는, 오로지 돈만 많고 권력과 밀착돼 있으며 복잡한 인맥을
자랑하는 재벌들과는 아예 비교가 불가한 이유이다.
역사(歷史)에서는 단순히 돈 많았던 집안을 기억하는 게 아니다.
그 돈을 어떻게 모았고, 또 어떻게 사용했으며, 그들의 삶이 사람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였는지를
평가한다.
때문에 단순히 대통령이 배출됐거나, 검찰총장이 나왔거나, 재벌노릇을 오랫동안 했다거나,
고위 관리가 많이 나왔다고 해서 이런 집안을 명문가로 치지도 않고 또한 존경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역사의 평가가 엄중한 것이다!
경주 최 부자댁의 가훈(家訓)을 살펴보면, 이런 존경과 신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일목요연
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앞서 블로그 글에서 육상객의 '육연(六然)'이 경주 최 부자댁 수신(修身)을 위한 가훈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집안의 특징은 가훈(家訓)이 단순하지가 않다.
깊이가 있고, 철학적이며, 매우 심오하다.
경주 최 부자댁의 가훈(家訓)을 요약하면 둔차(鈍次)이다.
동서고금의 많은 처세서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에서 차(次)는 '버금 차'이다.
'버금'이란 '등급이나 수준, 차례 따위에서 으뜸의 바로 다음' 말한다.
벌써부터 겸손의 향기가 복욱하지 않은가?...
때문에 '둔차'란, "재주가 둔해 으뜸가지 못함"을 뜻한다.
한마디로 <겸손>을 의미한다.
경주 최 부자댁의 가훈이 바로 '겸손'이다.
특히 경주 최 부자댁은 구체적으로 집안을 다스리는 가훈(家訓)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실행했다.
바로 수신(修身)을 위해서는 육상객의 '육연(六然)'을...
제가(齊家)를 위해서는 '육훈(六訓)'을 교훈으로 삼았다.
앞서 블로그 글에서 <육연>에 대한 설명을 했으므로, 이번엔 제가의 교훈 <육훈>을 알아본다.
육훈(六訓)
1.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2. 만 석 이상의 재산을 지니지 말며, 만 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에는 남의 땅을 사지 말라!
4. 과객(過客)은 후히 대접하라!
5.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6. 사방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없게 하라!
정말 놀랍지 않은가?...
누가 저런 생각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명문가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육훈(六訓) 속에 담긴 심오한 철학과 청렴, 겸손, 인간애(人間愛)를 주목하라!
이런 가훈을 아무나 남기고, 아무나 실행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재벌들처럼 돈과 권력이 밀착되고, 적선(積善)이나 사생활에 있어서 전혀 모범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는 결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권력에 빌붙고, 재벌이나 권력자와의 정략결혼으로 복잡하게 사돈을 맺으며, 또한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해 돈을 쓸어모은다 한들, 과연 경주 최 부자댁을 흉내 낼 수 있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재벌들은 이런 식으로 치부(治富)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시대의 재벌들을
전혀 존경하지도 않고, 오히려 비판하고 경멸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재벌들은 왜 경주 최 부자댁 같이 살아가지 못할까?...
이는 단적으로 삶과 인생, 재물, 권력, 인간애, 선(善)에 대해 최 부자댁처럼 심오하고 명징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돈을 쓸어모을 줄만 알지 이런 식의 겸손한 철학과 청렴한 생활, 적선방법을 흉내내지
못한다.
마음과 근기(根氣)부터 <육연>과 <육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알고보면, 이유와 차이점은 이토록 간단명료하다.
<경주(慶州)에 있는 최 부자댁>
경주 최 부자댁은 '최치원'의 17세 손인 '최진립' 장군과 그 아들 '최동량'이 경주에서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재경 '최국선'으로부터 28세 손인 문파 '최준'에 이르기까지 10대 약 300년 동안
부(富)를 누렸던 일가를 말한다.
'최치원'은 블로그에서 '범해(帆海)'를 소개하며 언급했던 인물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범해'의 첫 문장을 인용하며 화해를 강조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
(돛 걸고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에 만리를 통하네.)
'돛과 바람이 조화를 이루어 배가 만리라도 흘러갈 듯하다.'는 뜻이다.
당나라 문화가 최치원 같은 훌륭한 인재를 통해 주변 제국으로 전파됐음(萬里通)을 의미하고,
아울러 당나라 과거에 급제해 사로(仕路)에 나서고, 또 유.불.선(儒佛仙)에 모두 능통했던 고운
(孤雲) 최치원이 책과 경전 해석을 통해 중국의 사상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최치원'은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유학자이자 훌륭한 사상가(思想家)이다.
블로그에서 <범해>를 찾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또 최치원의 詩 <접시꽃>과 <앵도>도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선조의 철학과 사상,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조선시대부터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적선(積善)과
독립자금 지원, 교육기관 창립에 이르기까지 노블레스 오블레주(noblesse oblige)의 모범을
보여, 역사에 당당히 최고의 명문가로 이름을 올린 경주 최 부자댁!...
명문가(名門家)란... 돈 많고, 권력을 쥐었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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