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御筆, 王이 손수 쓴 글씨)
<어린 시절 정조가 연습한 글씨들>
<정조의 글씨>
<영조 어필(고조82-43)>
<태조 글씨, 열성 어필>
<문종 글씨>
<성종 글씨>
<한글 편지>
<정조가 8살 원손(元孫)일 때 외숙모에게 보낸 한글편지>
"상풍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을 알기를 바라며 뵈온 지가 오래되오니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봉서(편지)를보고 든든하고 반가우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쁩니다."
* (중간에 ~ 표시는 반복되는 글자에 대한 생략 표현이다.
즉 '섭~'은 "섭섭"을, '든~'은 "든든"을 뜻한다)
<선조가 정숙옹주에게 보낸 편지>
"글월 보았다. (정안 옹주의 얼굴에) 돋은 것은, 그 방이 어둡고 날씨도
음(陰)하니 햇빛이 돌아서 들면, 내가 친히 보고 자세히 기별하마.
대강 약을 쓸 일이 있어도 의관과 의녀를 들여 대령하게 하려 한다.
걱정 마라. 자연히 좋아지지 않겠느냐.
만력 31년(선조 36, 1603년) 계묘년 11월 19일 오전 10시경"
(이 편지는 세종대왕으로부터 한 세기 반 정도 후인 1603년(선조 36) 선조가
정숙 옹주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무렵 정숙 옹주의 동생인 정안 옹주는 마마(천연두)에 걸려 궁중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 병세를 걱정하는 언니 정숙 옹주의 편지에 대한
선조의 답장이다.
혼인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딸의 얼굴에 흉한 마마자국이 남으면 어쩌나
염려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과, 다른 자식들을 안심시키려는 배려가
짧은 글속에 담겨 있다.
당시 정숙옹주 나이는 17세, 정안옹주 나이는 14세였다.
그 뒤 정안옹주는 병이 다 나아 정숙옹주보다 훨씬 더 장수했다.)
<숙종이 어머니 명성왕후(현종 妃)에게 보낸 한글 편지>
"밤사이 평안하시옵니까. (대궐을) 나가실 때 “내일 들어오시옵소서” 하였사온데,
해창위(海昌尉, 명안공주 남편인 오태주(吳泰周))를 만나 떠나지 못하시는
것이옵니까. 아무리 섭섭하셔도 내일은 부디 들어오시옵소서."
(1680년경에 씌여진 이 편지 봉투에 수신처가 명성 왕후(현종비)가 아닌 '명안공주방'
(明安公主房)으로 되어 있는 것은 현종비가 혼인한 지 얼마 안된 셋째 딸 명안공주의
집에 다니러 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성 왕후가 누이동생 집에 가서 환궁 기일을 지키지 않자 숙종 임금이 모후의 환궁을
재촉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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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선조, 효종, 명성황후(고종 妃), 숙명공주(효종 딸)의 한글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