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조의 사패 3, 고안아(孤雁兒)
고안아(孤雁兒)
(짝 잃은 사람)
小風疏雨蕭蕭地 미풍에 성긴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又催下千行淚 또 다시 천 갈래 눈물을 흐르게 만드네
吹簫人去玉樓空 피리 불던 사람 떠나 옥루 비었고
腸斷與誰同倚 애간장 끊어지니 누구에게 의지하나
一枝折得 꽃 한 가지 껐었는데
人間天上 인간 세상, 천상에도
沒個人堪寄 그 꽃 보낼 사람 없노라
~* 이청조(李淸照) *~
* 마치 시인의 외로움이 뚝뚝 묻어날 것만 같은 詩이다.
아마도 남편과 사별 후, 외로움이 사무친 처연한 상태에서 쓴 詩로 추측된다.
28년을 극진히 사랑하고 보살펴 주던 이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게 된 '이청조'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수옥(漱玉, 이청조의 號)이 혼자된 것은 46살 때이다.
불혹을 훨씬 넘은 이 나이는 자주성과 정체성이 확실해지고, 인생의 무상함을
이미 깨달았어야 할 나이이다.
그러나 위의 詩를 보면, '누구에게 의지하나.' 걱정하며 한탄하는 시구가 보인다.
수옥은 긴 세월 동안 명문가인 친정과 시댁, 남편에게 의지하고만 살았기 때문에
자주성이 매우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남편과 사별 후, 불과 3년 만에 재혼한 것만 봐도 증명이 된다.
연애기간을 제외한다면, 그 기간은 훨씬 더 줄어든다.
성급하게 새로운 남자에게 정을 주고 의지하려다가, 그만 남편과는 모든 것이
정반대인 나쁜 남자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역경으로 점철된 험난한 삶이었다.
수옥은 왜 그리 외로움을 많이 타고, 의지할 곳을 빨리 찾았을까?
이는 성장 과정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이청조는 문학적 분위기가 농후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 모두 명문가의 후손이다.
아버지 이격비(李格非, 자는 文叔)는 북송시대의 관리이자 저명한 문장가였다.
특히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인 소식(蘇軾)이 매우 아끼던 인물이었다.
영리를 생각하지 않는 청렴한 관리였던 '이격비'는 소식의 영향을 받아 문학적으로
큰 성장을 했다.
그리고 '소식'의 문하들과 더불어 '소문후사학사(蘇門後四學士)'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훗날, 宋의 휘종 때 '소식에게 문장을 인정받았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파직을 당한 뒤 수도에서 쫓겨나는 등 화를 당했다.
어머니 또한 명문가 출신의 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물이었다.
산수가 수려한 지난(濟南)의 장구(章丘)에서 태어난 '수옥'은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했다. 어린 나이에 이미 경사자집(經史子集)과 시사가부(詩詞歌賦), 그리고
다양한 문체에 눈을 돌려 문학적 재능을 키워나갔다.
그녀의 시가 오언절구나 7언 율시와 같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섬세한 미적 의식과
정감을 개인의 독백형식으로 능숙하게 풀어놓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청조를 사(詞)의 명인이라고 부른다.
이청조의 시가(媤家) 또한 대단한 명문가였다.
남편 조명성의 부친 조정지는 후에 승상(丞相)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승상은 천자인 황제를 보필하는 최고위 관직이다.
당시 풍습대로 그들은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했지만, 이들은 서로
운명적으로 사랑하며 상대를 존경했다.
출가 전, 이미 북송(北宋)의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수옥의 결혼생활은 은풍했다.
조명성은 아내의 해박함과 문학적 재능에 감탄하여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었다.
宋代는 여성에게 전족(纏足)을 시키는 등 남성의 부속물처럼 여기던 시대이다.
하지만 조명성은 출중한 재능과 명석함을 지닌 아내를 존중했고, 그녀가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외조를 했다.
두 사람은 공동으로 서화와 금석문(金石文)을 수집해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청조'는 남편 '조명성'이 공명심이나 부를 탐하지 않고, 오직 학문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하면서 그를 사랑했다.
결국 조명성은 금석문에 해박한 지식을 갖게 돼 일가를 이루게 되었고, 구양수를
이어받아 송대의 저명한 금석학자로 인정받게 됐다.
아내 이청조의 도움이 컸음은 물론이다.
이런 환경 때문에 수옥은 남편과 사별하기 전까지 마음고생 없이 안한(安閑)하고
풍요한 삶을 살았다.
흠종 때 '정강(靖康, 흠종의 연호)의 변'이 일어나 피난 후, 남편과 사별하기 전까지
마음을 크게 다치는 그 어떤 역경도 경험하지 않았다.
때문에 급작스런 남편의 부재는, 슬픔과 더불어 외로움을 달래주고 의지할 남자에
대한 갈망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고통을 인내하고 승화시킬 그 어떤 훈련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값비싼 서화와 금석문 등을 탐낸 나쁜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수옥(漱玉) 이청조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된다.
그녀는 인생의 3분의 2를 여한없이 사랑받고, 호사스런 삶을 누렸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을, 고통으로 점철된 가시밭길을 걸었다.
초년과 중년에 부귀영화와 행복을 누리고, 말년을 비참하게 보냈다.
늘 얘기하지만,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이상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다 누릴 수도 없다.
인간의 삶은 공평하다. 당신이 믿건, 안 믿건 간에...
젊은 시절에 너무 많은 것을 누렸다면, 말년은 춥고 힘들다.
그게 정상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 시련과 역경을 많이 겪은 사람은 말년이 행복하고 여유롭다.
삶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이 정립되고, 고통과 역경을 통해 많은 내공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런 사람들에게 神의 은총이 내려진다.그래서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릴 때, 정상에 있을 때, 결코 교만하지 말고 남은 삶을
위해 적선(積善)과 자비를 많이 베풀고, 절제를 훈련하라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성현(聖賢)들이 가르치셨다.
그리고 지금도 모든 종교가 이와 같이 가르치고 있다.
힘든 삶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버티고 견뎌내면, 훗날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
이것이 하늘의 법이며, 진리이다.
말년이 편안하고 좋아야 진짜 행복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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