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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finger print)

아라홍련 2013. 2. 26. 22:04

 

 

 

 

동사무소에서 담당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게 거듭 말했다.

     "이상하네요. 지문이 왜 이렇게 흐리게 찍히죠?

      다시 손가락 좀 주세요."

나는 또 엄지손가락을 내주었다.

여자 직원은 내 손가락에 힘을 실어 다시 힘껏 지문을 찍었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지문이 안 찍히는거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녀가 다시 지문을 찍은 뒤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서야 난 내 엄지손가락의 지문이 닳아서 지문이 잘 찍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됐다.

담당 직원은, 여자가 지문이 닳아서 서류에 찍히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던지라

내 설명에도 끝내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머쓱해진 나는 한동안 엄지 손가락을 물티슈로 닦은 뒤, 이번엔 내 검지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난 오른쪽 검지에 지문이 거의 없다.

도서관에서는 키보드를 사용하지 못해 노트북에서 마우스 대신 검지 손가락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몇 년간 하루에 20시간 씩 노트북을 사용하다보니 손가락 지문이 거의 다 닳았고, 특히 오른손

검지가 지문이 가장 많이 닳았다.  

도서관을 떠나 노트북에서 컴퓨터로 바꾼 후에도, 키보드에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한동안 검지가

쓰라려서 불편했을 정도로 심했다.

한데... 이젠 엄지 지문까지 닳아서 서류에 잘 안 찍힐 줄은 정말 몰랐다. 

충.격.이.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우수상을 함께 탄 서예가 '신춘희'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함께 찍은 시상식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남겼다.

 

          http://blog.daum.net/inkbook/12860476

 

          글을 작성할 때는 이 정도면 최우수상 감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겸손해지다.

          같은 우수상의 김시연 작가는 박물관대학을 40여 회를 이수하고,

          하루에 우리말 200개 한자의 뜻과 함께 베낀다고 했다.

          글쓰다 손에 지문이 없어진 사람을 처음 보았다.

          6년 동안 고전번역원 자료와 씨름하며 '이몽'이라는 작품을 해냈다고 했다. 

 

노트북 사용을 하도 많이 해서 지문이 닳아 없어진 줄 모르고, 하도 글씨를 많이 써서

지문이 없어졌는 줄 알고 쓴 글이다.

아무튼 시상식 날, 지문이 닳아 없어진 내 손가락을 본 그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동사무소에서 나와 버스도 타지 않고, 다섯 정거장이 넘는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냥 서럽고, 힘들고, 지나간 고단했던 삶이 주마등처럼 흐르며 깊은 사색에 젖게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는 처지라 걷고... 또 걷고... 마냥 걷기만 했다.

특히 오전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터라 더 심중이 복잡다단했다. 

무엇보다 아직도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는 내 고단한 삶이 아프고 힙겨워,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계속 걷기만 했다.

 

그러다 집에 와서 우연히 그의 글을 보았다.

내 하나뿐인 <서로이웃>이 이웃들에게만 공개한 글...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나오는 좋은 구절들을, 마치 나를 보라는듯 가득 적어놓았다.

나는 그가 그렇게 길게 글을 써놓은 것을 처음 보았다.

하필 오늘, 마치 내 복잡한 심사를 미리 예견이라도 하고 써놓은 듯... 그래서 내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하려는 듯... 그렇게 긴 글을 남겨놓았다.

더구나 그 글은 며칠 전, 내가 그의 <서로이웃> 신청을 받아들여 처음 읽게 된 소중한

첫 번째 글이었다.

나는 그가 적어놓은 많은 구절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 글을 읽으며 한참동안 내 영혼을 다독이고 위로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가 단숨에 나를 힐링시킨 것이다.

 

금생에 옷깃만 스치려 해도 전생에 엄청난 인연이 쌓여야 가능하다.

한데 많은 세대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단 한번도 본 적 없고, 한번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심지어 서로 댓글 한 번 남기지 않은 나의 젊은 친구들이 블로그 글을 통해, 때로 오빠처럼

자상하게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작가는 어떤 작가이어야 하는가'대해 무언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의도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묘하게 맞아들어갔을 뿐이다.

허나 그 우연 속에, 어쩌면 아득한 먼 전생의 인연자석(因緣磁石) 하나쯤은 숨어있는 게

아닐는지, 그래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만나 영혼의 등롱을 켠게 아닌지, 때로 궁금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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