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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붓다 대표기자의 이몽 서평

아라홍련 2012. 8. 24. 16:59

한 시절 만나 꽃잎처럼 스러진 철종과 봉이
그들의 사랑은 한낱 허깨비같은 꿈이었어라
왕이기에 가질 수 없었던 사랑 그린 소설 ‘이몽’ 출간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보석처럼 박힌 ‘수작’
기사등록 : 12-07-26 20:40 이학종기자 urubella@naver.com

기사등록 : 12-07-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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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학종기자

 

 

비운의 왕 철종이 사랑한 유일한 여인, 봉이. 그는 철종의 정인이라는 이유로 끝내 죽임을 당한다. 자객의 독화살을 맞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봉이를, 그에게 향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스승 지명 선사가 등에 업고 혜각사 대웅전 앞뜰에 당도했다.

 

죽어가는 봉이와 선사의 대화는 참으로 눈물겹다. 채 피어나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을 구중궁궐로 떠나보내고 정인이 왕이 되었다는 이유로 끝내 생을 마감하는 봉이와 나누는 대화는 그대로가 한 편의 절절한 법문이다.

자신이 만든 향을 전하께 전해달라며 지명 선사와 나누는 대화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지명 선사는 봉이와 강화도령 철종의 스승이자, 철종이 왕이 된 후에는 왕사와 같은 역할을 했던 스님이다.

 

“전… 전하 꿈속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꿈속에 나타나면… 전하는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전하가 빨리 잊고… 성군이 되시기를….”

“분명 그리되실 게다!”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넌 선업을 많이 쌓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번 생의 몸이 마지막 몸이 되어라. 니르바나로 들어가 해탈하여라.”

“그 말… 다시 듣고 싶어요. 인생은….”

“연꽃잎에 내리는 빗방울과 같다…. 인생은 연꽃잎에 내리는 빗방울과 같다….”

 

선사는 봉이와 이렇게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는 숨이 끊어진 봉이를 업고 탑돌이를 멈추지 못한다.


조선 역사상 가장 슬픈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왕 인간 철종의 숨겨진 사랑과 비극적 삶을 그린 소설 <이몽>(전2권, 은행나무 펴냄)이 출간됐다. 소설의 제목 ‘이몽(異夢)’은, 다른 꿈이라는 뜻이다.

'이몽'은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각자 원하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철종과 봉이는 정인과 평생 함께할 꿈을 꾸었고, 이하응은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종친의 조선을 건국하는 꿈을 꾸었으며, 안동김씨는 그들의 세도정치를 성공적으로 연장하려는 꿈을, 풍양조씨는 안동김씨를 쳐내고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이뿐이랴.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는 왕과 세도가문을 버리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꿈을 꾸었고…. 이렇듯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각자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향해 달린다. 여름날 밤, 등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이몽에서는 이렇듯 각자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세력들 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권력다툼이든. 이권다툼이든, 싸움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잔금처럼 남기게 마련이다.

각자의 권력의 꿈에 의해서 철종과 봉이의 단출한 꿈은 철저하게 짓밟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봉이는 안동김씨의 꿈에 의해 먼저 희생당한다. 철종은 안동김씨의 꿈 때문에 강화도령에서 갑자기 왕이 되지만, 결국 안동김씨의 꿈으로 인해 철종의 꿈은 짓밟히고 만다. 봉이를 잃고 난 후 마음을 다잡고 성군이 되고자 했던 철종의 꿈 또한 처참하게 짓밟힌다. 안동김씨의 힘 앞에 왕의 존재는 미미했던 것이다.

소설 <이몽>의 김시연 작가는 이 비극적인 왕의 일생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펜끝에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거나 미미한 존재였던 철종이 펄펄 되살아난다.

“사가들조차 밝혀 내지 못한 궁중 사람들의 삶과 문화, 풍속, 의례, 환경의 완벽한 복원!” 역사학자 임용한의 소설 <이몽>에 대한 찬탄이다. 작품에 대한 찬사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용양호시(龍驤虎視),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쏘아보는 작가가 나타났다. 시대의 벽을 뚫고 150년 만에 재발견된 철종의 역사!” 역사학자인 광운대 김인호 교수의 상찬이다.

책이 출간된 지 한 달여 지났을 때, 한 인문학 모임에서 만난 작가 김시연 씨로부터 직접 책을 받았다. 활달한 모습이 작가 김시연의 첫 인상이었기에 소설 또한 발랄하고 경쾌하며 가벼운 내용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책을 펴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나의 선입견이 모두 다 틀렸음을 알아챘다. 만만치 않은 내공이 첫 장부터 가득 배어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거의 일상에서 사라진 아름다운 우리말이 보석처럼 문장 곳곳에 박혀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사라졌던 철종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철종의 기구한 삶을 통해, 즉 무엇이 그토록 순수했던 강화도령을 이렇게 처절하게 만들었나를 추적해 들어간다.

그리고는 그 원인이 권력에 눈이 먼 인간이었음을 밝힌다. 철종의 비극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탐욕은 언제나 만족되는 순간이 없다. 탐욕은 또 다른 탐욕을 낳을 뿐이다. 이 소설에서도 탐욕은 운명처럼 이어진다. 철종이 쓰러지는 순간에도 탐욕은 끝나지 않았고 다만 안동김씨의 꿈만 멈추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도 순간, 안동김씨의 몰락은 곧 풍양조씨와 이하응의 탐욕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설은 권문세도가들이 장악하고 있던 조선후기 신권사회에서 성군이 되길 원했으나 허수아비왕으로 스러질 수밖에 없었던 철종을 주인공으로 그린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왕으로서가 아닌 인간 이원범(철종)의 숨겨진 삶과 비극적 사랑을 통해 철종을 인간적으로 재조명하고, 잘못 인식되어 왔던 철종의 역사를 바로잡는 내용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철종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한 축으로 철종과 흥선군, 순원왕후와 조 대비, 왕을 지키려는 충신들과 권문세도가들의 서로 다른 꿈과 야망이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방송작가 출신답게 기민하고 생동감 있는 대화와 설명들이 영상미 넘치는 문장을 타고 긴박감을 더해준다.

작가는 처녀소설인 <이몽>을 완성하기 위해 6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집필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6년이라. 6년 세월이면 부처님께서 고행을 했던 시기와 같은 기간이다. 작가는 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대각을 성취하셨듯이, 6년의 집필 끝에 우리시대 또 하나의 수작으로 손꼽힐만한 역사소설을 잉태시킨 것이다.

이 책은 철종에 관한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옹원과 내시, 왕실 의식, 풍속 등 그동안 소설과 드라마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전통의례들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점에서도 매우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또 조선시대부터 사용하던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새롭게 발굴해 스토리에 적절히 구현해 냄으로써 전문가들로부터 "아름답고 다양한 순우리말을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여 낸 결정체!"라는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고명한 어른이신 방송작가 윤청광 선생도 이 소설에 대해 “홍명희의 <임꺽정>을 다시 읽는 듯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아름답고 다양한 순우리말과 고어를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여낸 결정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데뷔한 한 늦깎이 여류 소설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탄생시킨 첫 소설 <이몽>. 그러나 세월은 신인의 작품에 쉽게 주목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보석이라도 처음 보는 상인에게 선뜻 살 수 없는 이치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값어치 있는 보석은 늘 만나는 상인에게서는 구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더운 휴가철에 엄청난 내공을 갖춘 역사소설 <이몽>을 통해 철종의 사랑과 좌절을 통해 인간이 갖는 탐욕의 무상을 깨닫는,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얻으시기 바란다.

 

*소설가 김시연은?

김시연은 방송 작가 및 소설가. KBS?메디컬 드라마 ‘제7병동’으로 드라마를 쓰기 시작해 청소년 드라마 ‘맥랑시대’, 다큐멘터리 극장 ‘삼청교육대’와 ‘영욕의 청와대’ 등 주로 리얼리티가 강한 작품들을 비롯해, 논픽션 드라마와 드라마게임 등 수많은 단막극과 다큐멘터리들을 썼다.

드라마 집필 외에도 대학에서 10여 년간 교육심리학을 가르쳤다. 관련 저서로 <심리학개론>, <인성교육>이 있다.

역사소설을 쓰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사서삼경을 배웠고, 여러 박물관을 문턱 닳도록 드나들어 ‘박물관이 낳은 작가’라는 별칭이 붙었을 정도로 이 소설의 집필에 몰두했다. <이몽>은 그러니까 작가가 6년간 온전히 집필에만 몰두하여 독자에게 선보이는 첫 장편 역사소설인 셈이다.

현재 아관파천을 실행한 엄비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제국의 여왕 추완>과 고전잠언집 <향경(向鏡)>을 집필 중이다.